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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삶으로 예배하라 / 제28권 29호 2016.07.17. 김은호 목사

꿈 꾸는 소년 2016. 7. 26. 10:21

<롬 2:1>

 

 □ 그러므로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慈悲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라"(롬12:1절a)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를 통해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은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면' 이제부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오직 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이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하여 흠이 없고 점도 없는 깨끗한 제물을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처럼 짐승을 잡아 죽임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그린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한 제물로 드리는 것을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예배의 장소가 중요했습니다. 아무 데서나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a)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왜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전 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성전 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전 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뭘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는 이제는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축도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축도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우리의 삶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우리의 삶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

 

 첫째, 세상이 신앙생활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속에 있던 우리를 불러내어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교회 안에 우리를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이렇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곳이 어디입니까? 세상입니다. 또 주님은 분명히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의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빛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소금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우리의 신분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아무나 들릴 수 없습니다. 왜 구약의 사울 왕이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바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담대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삶의 예배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가 드려야 할 삶의 예배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일은 거룩하고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봉사나 세상에서의 일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삶은 뭘까요? 모든 일에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예배인 것입니다. 

 

 둘째,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려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렇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세상에서 입니다. 교회 안에서가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이 세대에서 음란하고 패역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모여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돌아가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흩어져 삶의 예배를 들려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