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이기홍]나치 치하 지식인에 대한 斷想

꿈 꾸는 소년 2012. 12. 2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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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목)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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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나치 치하 지식인에 대한 斷想

이기홍 사회부장

소설가 공지영 씨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튿날 트위터에 “아침에 한술 뜨다가 비로소 울었다…나치 치하의 독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절망은 독재자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게서 온다”라고 썼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그 소식을 전했는데, 다들 실소(失笑)하며 한 귀로 흘려버리는 반응이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일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지식인들 진영논리로 진실 외면

하지만 필자는 한동안 여러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필자가 공 씨의 글에 주목한 이유는 그 글이 오랜 기간 세상의 한쪽 단면만을 들여다볼 경우 사람이 얼마나 균형감각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념적 지향성과 다른 정권을 나치 같은 절대악과 동일시하는 단선적·독선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 일각에 여전히 남아있음을 드러내준 사례여서만도 아니었다.

필자가 공 씨 글에 주목한 진짜 이유는 ‘나치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이 시대에도 유효한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나치 시대의 지식인을 떠올릴 때면 “당신이 지금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준엄한 물음이 생각난다. 1942∼45년 유대인 600만 명이 나치 제국의 수용소에서 처형됐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득해지는 숫자다. 하지만 그 시대 독일의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진실을 외면했다. 150만 명이 학살된 트레블링카 수용소 인근에 살던 주민들은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는 몰랐다고들 한다. 노벨상 수상작가 존 쿠체는 그들이 ‘자의적 무지’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일부러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한 사례가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이다. 무려 200만 명이 굶주려 죽어갔고 지금도 처형과 고문이 난무하는 수용소에 숱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이를 외면하는 이들은 2차대전 후 지식인들이 그랬듯 훗날 “당시엔 사실이라고 확신할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고 변명할 것이다. 나치 시절의 총칼 대신 지금은 진영논리와 이념의 덫에 눌려 많은 이들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인들이 진영으로 나뉘어 양면의 진실, 명암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쪽만을 본다. 예를 들어 기업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이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룡의 비늘처럼 떨어져 나간 해고자들의 절절한 아픔을 외면한다. 반대 진영에 선 이들은 기업이 처한 무한경쟁의 현실을 도외시한다.

나치 지식인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선전선동술’의 파괴력이다. 히틀러가 집권하고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는 숱한 선전선동 기술자들의 기여가 있었다. 독일 국민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이성과 합리적 판단을 버리고 히틀러의 선동에 휩쓸려 갔듯이 교활하고 유능한 선전선동가가 대중을 현혹할 위험은 어느 시대에나 상존한다. 우리 사회도 전두환 시절의 땡전뉴스, 정연주 KBS의 탄핵방송, 광우병 PD수첩팀의 ‘편집의 묘술’ 등 자신이 따르는 권력이나 이념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선전선동 기술을 창안해내는 행태를 목격해왔다. 곧 새로운 권력이 출범하면 기꺼이 21세기의 괴벨스가 되겠다는 지식인이 줄을 이을 것이며, 좌파진영에선 새 정권을 공략할 온갖 선전선동술을 고안해낼 것이다.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은 ‘모르쇠’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을 ‘독재자에 열광하는 우민’으로 여기는 그런 시각을 가진 이는 좌우 어느 쪽이든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발언들이 일부 계층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취약한 토양과 소외된 영역이 많음을 방증한다. 작가는 세상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하는데 공 씨도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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