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頂 - 李陸史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詩壇 2020.12.16
아무렴 - 이채 ☞ 아무렵 :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 상대편의 말에 강한 긍정을 보일 때 하는 말. 한번 왔다 가는 인생 그냥 갈 수는 없잖아 ☞ 그냥 :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그런 모양으로 줄곧.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바람 같은 인생이라면 나뭇잎이라도 흔들고 가야지 강물 같은 인생이라면 이슬이라도 맺혔다 가야지 그래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야지 꽃 같은 인생이라면 씨앗이라도 여물고 가야지 나그네 같은 인생이라면 발자국이라도 남기고 가야지 아무렵 뒷모습은 뒷사람이 볼 수 있는 게지 박수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은 없어야지 그래야 마지막 길에서도 부끄럽진 않겠지 詩壇 2020.12.13
인생의 가을에서 - 김홍성 평생을 지고가야 하는 삶의 무게 그 삶이 무거워 내려놓을 때 쯤 인생의 가을 들녘에서 뒤돌아보게 됩니다 뒤돌아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讓步하면 損害볼 것만 같아 못난 고집을 꺾지 않아 所重한 친구를 잃었고... 빈 자리 없이 꽉 채운 욕심 때문에 알뜰히 모은 재산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릴 뻔한 때도 있었습니다 인생 길... 좀 늦게 가면 어떻고 둘러 가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두 갈래 길을 만나면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 갈등으로 利害打算을 하게 되어 慾心과 劣等感에 억지를 부리고 말지요 빈 잔에 찰랑이도록 욕심껏 채운들 무얼하겠습니까? 인생도 낙엽처럼 살다가는 삶 서둘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남의 말에도 귀 기우릴 때 내 삶이 潤澤해 진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써 알 것 같습니다.. 詩壇 2020.12.12
가을 엽서 - 안도현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詩壇 2020.12.12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난 여름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주여, 해시계들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五穀 무르익은 들판에 바람이 불어오게 하소서. 주여, 마지막 남은 열매들까지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열매들이 영글도록 재촉하시어 단맛 중의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詩壇 2020.12.12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김현승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謙虛한 母國語로 ☞ 겸허 :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비옥 : 땅이 걸고 기름짐.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詩壇 2020.12.12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 김현주 단풍나무, 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날들 이어지더니 가을이 오고 말았지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모하던 나는 산에 올라 못되게도 단풍나무에게 다 뱉어내 버렸지요 내 부끄러운 마음,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아, 단풍나무, 고만, 온 몸이 불게 물들기 시작하데요 내 낯 빛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해질수록 ... 가을 산마다, 단풍나무 붉게 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詩壇 2020.12.12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은 소리가 - 강인호 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 어인 : ‘어찌 된’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 딱히 : 부사 정확하게 꼭 집어서. 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내가 부끄러워진다 詩壇 2020.12.12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산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혜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詩壇 2020.12.12
水仙花에게 - 정승호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空然히 오지 않는 전화를 ☞ 공연히 : 아무 까닭이나 실속이 없게.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詩壇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