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신연수]5년마다 도루묵

꿈 꾸는 소년 2013. 8. 3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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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1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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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5년마다 도루묵

신연수 논설위원

“검은 티셔츠 입고 시위 들어갑시다.”

“아줌마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대학입시제도 변경안이 발표된 27일과 그 다음 날 일선 학교와 엄마들은 들끓었다. 국영수를 난도에 따라 A, B형으로 나눠 시험 보는 ‘선택형 수능’을 올해 시작하자마자 없애는 등 대입전형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니 내용은 둘째 치고 일단 바뀐다는 데 진저리를 치는 분위기다. ‘사학의 고유한 건학이념을 살린다’는 근사한 명분으로 도입한 자율형사립고도 사실상 폐지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명박(MB) 정부의 정책들이 하나둘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2009년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했는데 4년 만에 도로 통합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민영화를 추진하고 정책금융공사는 공기관으로 남기겠다던 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에도 금융위기 시대에 민영화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아무 성과도 없이 자산 200조 원의 거대 공공기관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한 셈이다.

MB가 심혈을 기울였던 자원외교는 진즉 파탄이 났다. 해외 자원을 개발한다면서 공기업들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실제 성과는 별로 없었다. 자원외교의 선봉에 섰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은 감옥에 있다.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인 보금자리주택 건설은 중단되고 다른 형태의 행복주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성장률은 올라가겠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로 쪼개는 데 2500억 원의 비용이 들었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을 개발하는 데 426억 원을 투자했다. 4대강 공사에 22조 원이 들었는데 정부 일각의 주장처럼 보(洑)를 철거한다면 또다시 큰돈이 들 것이다. 경제성장률에는 플러스다. 지진이 나서 건물과 도로가 무너져 복구를 해도 국내총생산(GDP)은 올라간다. 삶의 질과 동떨어진 경제성장률의 모순이다.

압권은 4대강이다.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에 대해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말했다. 평소와 달리 자신의 이름을 밝혀달라며 공식 브리핑을 자청해서 한 말이다. 그 광경을 보고 5년 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2008년 총선 후보자 공천에서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직후 MB와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했던 모습 말이다.

대선 후보 경선을 할 때도,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한 사람은 당에 남았을 때도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었다.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둘 사이엔 깊은 불신(不信)의 강이 흐른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MB가 정운찬이나 김태호 같은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때마다 친박계는 “MB가 박근혜 대신 다른 대권 후보를 키우려 한다”고 반발했던 것이다. 사실상 여당 내 야당이었던 박 대통령의 MB에 대한 불신이 4년여 남은 집권 기간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5년 전 MB 역시 전(前) 정권 흔적 지우기에 몰두했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을 무리하게 옷 벗기고, 한창이던 세종시 건설을 흔들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노무현 정부 때 쓰던 용어를 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이전 정부를 ‘청산’하려고 했다. 서슬 퍼렇던 당시엔 자신들도 5년 뒤 같은 운명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평가하기 전에 정권이 이전 정권을 심판함으로써 멍드는 건 사회적 신뢰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건 대한민국 정부고 공무원들이기 때문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겠는가. 박근혜 정부도 지금 추진하는 일들이 5년 뒤에 뒤집히지 않을지 멀리 내다보고 고민했으면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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