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최영훈]박 대통령의 신년 회견과 박치기 사건

꿈 꾸는 소년 2015. 1. 2. 05:02

 

dongA.com

2015-01-02 03:00:00 편집

프린트닫기

[오늘과 내일/최영훈]박 대통령의 신년 회견과 박치기 사건

최영훈 논설위원

유신 말기인 1979년 1월 19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건 없는 남북 대화를 제안하면서 남북통일과 그에 병행하는 안보를 강조했다. 그전까지 쭉 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으나 그해는 앉아서 질문을 받았다. 박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이 나왔다. 78년 12월 총선에선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득표율이 공화당을 1.1%포인트 앞질렀다. 이변이었다.

동아일보 강성재 기자는 9번째 질문자였다. 그에게는 ‘각하께서 창안 주도해 오신 새마을운동은 국가 발전의 독창적 모형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더욱 발전적인 추진을 위한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이 배정됐다. 잠 못 이루며 고심한 끝에 ‘각하께서’를 ‘대통령께서’로 고치고 취락 구조 개선 사업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추가했다.

살벌하던 시절 각본에 따라 진행하던 관례를 겁 없이 깬 것이다. 강 기자가 추가 질문을 하자 차지철 경호실장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고 권총을 찬 허리춤으로 손이 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배석한 구자춘 내무장관에게 답하라고 했으나 그가 우물쭈물하자 전임인 김치열 법무장관이 대신 답했다. 강 기자는 회견 뒤 뒤탈을 걱정했으나 별일 없이 넘어갔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두 달쯤 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초대해 만찬 행사를 가졌다. 박 대통령은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YS에 대한 비판에 이어 “김영삼이가 동아일보 같은 신문에서 가세해 주니까 힘을 얻어…”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그러고 나서 작별 인사 때 박 대통령이 강 기자의 이마를 들이받는 ‘박치기 사건’이 벌어졌다. 임방현 대변인과 배석했던 영애(박근혜)가 부축해 본관으로 향했다.

박치기 사건을 둘러싸고 온갖 억측이 구구했다. 강 기자는 청와대 출입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열흘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 기자에게 정식 사과를 했다. 그런 사실로 미뤄 보면 강 기자가 미워서라기보다 정권에 비판적인 동아일보에 쌓인 감정이 취기와 함께 분출한 것 같다. 집권 18년을 맞아 쇠잔해 가던 62세의 그에게 1979년 신년 회견은 마지막 신년 회견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얼마 뒤 신년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박 대통령은 생전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됐다. 아버지가 최후의 신년 회견에서 남북통일을 강조한 것처럼 박 대통령도 그런 메시지를 담을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야당 시절 ‘최초의 통일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잘 보필하겠다’고 다짐한 일이 있다. 좋아하시더라”고 했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한다.

역대 정권은 집권 3년 차에 승부수를 던졌다. 노태우의 3당 합당이나 DJ의 남북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권력 투쟁이나 친인척 비리로 ‘집권 3년 차 신드롬(위기)’을 막진 못했다. 집권 2년 차에 이미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투로 말했다. 박 대통령의 화답에 관심이 쏠린다.

권력이 뭔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사람을 제대로 움직이려면 소통해야 한다. 권력은 소통하는 만큼 강해지고, 나눌수록 커진다. 그런 믿음으로 박 대통령이 권력 운용과 리더십 변화부터 시도하는 게 위기 돌파의 지름길이다. 권력은 스스로 커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손아귀에 꽉 쥐려 하면 권력은 도망간다. 통일도 좋고 개혁도 좋지만 “나부터 변화하겠다”는 다짐을 신년 회견의 첫머리에서 볼 수 없을까.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Copyright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