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봉평장이 보여준 긍정의 힘
신치영 경제부 차장
얼마 전 한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에이미 커디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눠 각각 2분간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한쪽에는 가슴을 펴고 허리에 두 손을 올리거나 의자에 앉아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는 등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하게 하고, 다른 쪽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거나 고개를 떨구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하도록 했다. 그런 뒤 양쪽 사람들의 호르몬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자신감 있는 자세를 취한 사람들은 검사 전에 비해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평균 25% 감소하고 그 대신 근육과 힘을 상징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20% 증가했다. 반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사람들은 코르티솔이 15% 증가하고 테스토스테론이 10% 감소했다고 한다. 자세가 호르몬 분비까지 변화시킨다니 생각과 태도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닌 것 같다.
사람뿐만 아니다. 조직원들의 생각은 조직의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조직원들이 ‘우리 조직은 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조직은 희망이 없다. 조직원들이 ‘그래, 한번 해보자’고 맘먹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조직의 미래는 달라진다. 강원 평창군의 봉평시장이 현대카드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은 문을 연 지 400년이 넘은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5일장이 설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봉평장은 1980년대 산업화 이후 사람들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도시로 떠나면서 손님이 줄고 상인도 줄어 명맥만 유지하던 터였다. 그러다 2013년 3월에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요청을 받은 현대카드는 봉평장 부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작년 5월 봉평장이 현대카드의 솔루션을 실행한 이후 1년도 안 돼 시장을 찾는 고객은 갑절 이상으로 늘고 매출도 급증했다. 시장을 떠난 장돌뱅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대카드는 돈을 퍼부어 시장 입구에 아치형 출입문을 세우고 시장 상품권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현대카드가 처음부터 고수한 원칙은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다’는 거였다. 시장을 찾는 고객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는 방법을 상인들에게 컨설팅해준 것이다. 땅바닥 좌판에 깔린 물건을 고객 눈높이에 만든 매대에 진열하게 하거나, 고객들이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파는 물건 종류를 다섯 가지로 나눠 천막의 색깔을 통일하도록 조언하는 식이었다.
나머지는 상인들의 몫이었다. 현대카드의 도움도 컸지만 어떻게든 시장을 다시 살려보자는 상인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없었다면 봉평장의 재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던 일부 상인들도 고객들의 호응이 점점 커지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요즘 이 시장의 상인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상인연합회 사무소에 모여 영어 공부를 한다. 늘어나는 외국인 손님들을 제대로 응대하기 위해서다.
봉평장 상인들이 만든 페이스북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더 밝은 미래,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마음이 함께해야겠지요? 그것이 바로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내다보는 이름, 희망입니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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