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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라

꿈 꾸는 소년 2016. 5. 17. 02:43

<롬 8:3~9>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神秘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비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처를 정하시고 내주하여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말 신비 중의 신비는 성령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 내 몸을 성전 삼고 내 안에 내주하여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보다 더 놀라운 신비는 없습니다.

 

 □ 保惠師 聖靈님

 

 그러면 나의 몸을 성전 삼고 내 안에 내주하여 계시는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但只 손님처럼 내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오셨을까? 아닙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끊임없이 일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역사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끊임없이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6)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옆에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보혜사라는 이름 그대로 저와 여러분을 돕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도우실까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므로 도우십니다. 때로는 우리를 책망하시며 때로는 위로하시고 변호하시며 도우십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도우십니다. 때로는 우리를 책망하시며 때로는 위로하시고 변호하시며 도우십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도우십니다.

 

 □ 인도하시는 성령님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13절a)  그리고 "무릇(대체로 헤아려 생각하건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닐 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은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그 영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4절,5절) 갈5장 16절에도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5:16절a)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할 때 행하라는 원어의 뜻은 '걸어가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행하라는 말은 "성령과 함께 걸어가라"입니다. 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까? 광야의 나그네 인생길, 아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 좁은 길을 나와 함께 걷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로마서에는 성령을 뜻하느 주님을 따르는 이 좁은 길을 나와 함께 걷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로마서에는 성령을 뜻하는 뜻하는 프뉴마라는 단어가 34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롬8장에만 무려 21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롬8장을 성령장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면 이제 생명이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자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며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롬8:14)

 

 □ 왜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하는가?

 

 첫째,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4절)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지게 하려 하심이라"(4절)고 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된다."(갈5:18)고 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요구란 뭘까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선하지만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율법을 지켜 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기 이전부터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던 죄의 본성과 우리 인간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질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악된 세상에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치루어 아들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셨기 때문입니다.(3절)

 

 둘째,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가 영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5절) 여기 나오는 육신은 사람이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탁락한 죄의 本性을 말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일은 육체의 욕심을 말합니다.(갈5:19~21) 하지만 성령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일이란 성령께서 바라시는 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영의 일, 곧 성령께서 바라는 일은 뭘까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육신의 생각이란 하나님이 없는 생각이요 타락한 인간이 본성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생각들은 아무리 고상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지만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가장 큰 기쁨

 

 그래서 바울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절)고 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열심과 선행과 능력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믿음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