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왜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는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엄마는 아이의 감정이 소화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소화시키는 시간이 다르듯 감정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감정을 느끼고 소화하는 시간은 다 다르다. 그런데 부모들은 종종 아이의 감정의 형성과 해결까지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우(愚)를 범한다. 이 엄마도 그랬다. 하지만 기다려주지 못한 데에는 그런 대로 이유가 있다. 아이가 계속 울자, 엄마 안에는 ‘안타까움’ 이외에 많은 감정이 일어났다. 감정이 많아지자 엄마는 그 감정들을 다 감당해 낼 수 없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다 자신의 핵심 감정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감정은 제 길을 잃고, 첫 마음과는 다른 반응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감정은 자주 길을 잃는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시작하는데 종국에는 ‘화’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 처음 느낀 감정 그대로 아이를 대해주지 못하는 걸까. 유난히 ‘불편한 감정’에 취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의 불편한 감정도, 나의 불편한 감정도 너무 부담스러워한다.
감정마다 표현되는 길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슬플 때는 운다, ‘안타까울’ 때는 위로한다, ‘걱정’이 되면 더 세심하게 돌본다…. 감정의 길대로 표현하려면 지금 이 감정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감정이 길을 잃어 반응이 얼토당토않아진다.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표현하게 되어 있다. 별것 아닌 일에 통곡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를 때리기도 한다. 아니면 악성 댓글을 달기라도 해야 한다. 자기 몸이 아파져서라도 표현을 한다.
아이 감정을 잘 발달시켜 주려면 부모 감정이 잘 발달해야 한다. 감정이 잘 발달한 사람은 감정의 길을 잘 찾아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프로젝트를 보고했는데 꾸지람을 들었다고 치자.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이때 감정이 잘 발달한 사람은 ‘내가 지금 기분이 좀 나쁘네’를 잘 포착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저 사람은 충고를 한 건데, 나는 기분이 나빴구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빠지는 특성이 나에게 있구나. 나는 왜 그럴까’ 하고 나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저 사람이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니,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되지’라고 감정을 다뤄낸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도 잘 이해를 한다. 상대가 갑자기 화를 내어도 ‘저 사람이 왜 갑자기 화를 내지? 뭔가 일시적으로 기분이 좀 나쁜 것이 있나?’ 하면서 내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너무 성인군자 이야기 같은가. 물론 하루 만에 이렇게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감정발달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수 있다. 내 감정으로 인해 내 아이에게 주는 나쁜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다행히 감정발달은 후천적이다. 교육으로, 훈련으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감정을 발달시키려면 가장 먼저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너무 어렵다. 오랫동안 나의 불편한 감정이 건드려지는 것이 너무 싫어 숨겨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감정 표현이 부족해졌고, 표현했다 하면 폭탄처럼 갑자기 과다한 감정을 쏟아내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불편한 감정을 건드리면 바로 폭발한다. 누군가를 공격할 때, 그의 불편한 감정부터 건드린다. 치명적인 약점임을 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반응을 내 아이에게도 그대로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주 ‘부모의 감정’에 대한 글을 실으려고 한다. 부모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감정이 어떻게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지, 어떻게 감정의 본질을 직시해야 하는지 다루려고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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