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화 아이디어 두번 빼앗겨… 개회식 90% 만족”

꿈 꾸는 소년 2018. 2. 12.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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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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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아이디어 두번 빼앗겨… 개회식 90% 만족”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송승환 “단일팀 성화주자 리허설 못해… 개회식 1시간전에야 설명해줘”


《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박종아(한국)와 정수현(북한)이 최종 주자로 나서 김연아에게 성화를 넘겨주었다. 원래는 축구스타 안정환이 김연아에게 넘겨주기로 돼 있었지만 하루 전에 바뀌었고 개회식 1시간 전에야 두 선수에게 설명했다. 송승환 개·폐회식 총감독(사진)은 두 선수가 김연아에게 성화를 건네려 ‘빛의 계단’을 올라갈 때 몸무게 초과로 계단이 무너질까 마음을 졸였다. 화제를 모은 ‘인면조’는 고구려 벽화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해외 제작자가 일본 사무라이 얼굴처럼 만들어 와 급히 한국형 얼굴로 수정했다. 평창 개회식 뒷얘기를 송 감독에게 들었다. 》
 
 

송승환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61)이 11일 개·폐회식 장소인 올림픽플라자에서 2년 반 동안의 개회식 준비 애환을 밝은 표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평창=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절대 기죽지 마세요. 우린 최선을 다했어요. 다들 후회는 없잖아요.”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을 앞두고 송승환 평창 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61)은 스태프와 출연진을 다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송 총감독의 말처럼 기죽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개회식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2015년 7월 총감독으로 선정된 뒤 2년 반 동안 개·폐회식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2주 뒤 있을 폐회식만 남겨두고 있다. 11일 개·폐회식 장소인 올림픽스타디움이 보이는 강원 평창군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개회식에서 예정했던 것의 90% 이상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10%는 무엇인가.

“관객이 눈치채지 못한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 태극을 만드는 장구춤 무대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입장한 뒤 자리에 앉을 때다. 관객의 시선이 그쪽에 쏠려 있는 사이 중앙 무대가 바닥에 내려가 연주자 180명을 태우고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제 시간에 내려가지 못했다. 급하게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화면을 띄웠다. 비상용 4분짜리 영상도 준비시켰다. 다행히 무대가 작동했지만 예정보다 10초 늘어졌다. 10시간 같았던 10초였다.”

―또 예상 못한 다른 하나는….

“가수들의 ‘이매진’ 노래가 끝난 뒤 드론 300대를 띄우려 했다. 드론이 비둘기 모양을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드론은 뜨지 못했다. 날씨는 좋았지만 드론이 대기한 구역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띄울 상황이 아니었다. 하고자 했던 것을 다 못해 아쉽지만 그 외는 거의 완벽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승환 총감독께 작년에 제가 개막식 내용을 처음 설명 들으며 깐깐하게 굴었던 일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개·폐회식 연출안을 문서로 이 총리에게 보고했다. 이 총리는 ‘콘셉트만 좋으면 뭐 하냐, 잘 표현해야 하지 않냐.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섭섭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모든 예술가들을 위해 사과와 감사를 전해준 것 같아 정말 고맙다.”

―부족한 예산이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예산으로 인한 고충은 없었나.

“처음 총감독직을 맡았을 때 10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저비용 추구로 예산이 600억 원으로 줄었다. 굉장히 힘들었다. 평창은 큰 도시가 아니라 인프라가 약했다. 출연자와 스태프의 숙박, 운송, 식사 등을 예산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실제 공연을 만드는 금액은 200억∼300억 원 정도다. 다행히 개회식을 두 달 앞두고 100억 원 정도 증액이 됐다. 객석의 발광다이오드(LED) 설치도 그 증액이 없었다면 힘들었다.”

―예정대로 1000억 원이 지원됐다면….

“무대 전체가 리프트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굉장히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공사 전 오각형의 무대 설계를 부탁했고 리프트 설치를 위해 지하를 7m 파달라고 했다. 그러면 무대를 5m 위로 띄울 수 있다. 하지만 예산이 없어 리프트는 가운데 하나에 3m 깊이로만 파 설치했다. 소도구를 좀 더 좋게 만들지 못한 것도 아쉽다.”

9일 열린 개회식에서 등장한 인면조. 사람 얼굴을 한 독특한 생김새로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평창=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개회식에 등장한 인면조의 반응이 뜨겁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젊은층에서 신기해한 것 같다. 인면조를 포함해 백호 청룡 주작 현무 등 총 5개 동물 퍼핏(인형)은 뮤지컬 ‘라이언 킹’의 퍼핏 디자이너 니컬러스 머혼이 제작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제작해 한국에 들여왔을 때 인면조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 스타일과 얼굴색이 일본 사무라이나 가부키 배우 같았다. M자 머리를 일자로 바꾸기 위해 머리를 심고, 노란색으로 얼굴색을 바꿨다. 인면조 캐릭터 상품 출시 요청이 있는데 IOC에 저작권이 있어 힘들 것 같다.”

―개회식 성화 점화 리허설 사진이 사전 유출되기도 했는데….

“난 성화를 두 번 도둑맞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전에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미국의 키네틱 아티스트 앤서니 하우의 태양 모양의 작품을 성화 점화대로 점찍었다. 직접 브라질로 개회식을 보러 갔는데 그 모양의 성화 점화대가 등장했다.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랐다. 성화 점화의 리허설 유출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와우 포인트’(감탄사가 나오는 장면)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120개의 계단과 빙판 위 김연아의 아이스댄스가 유출됐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앞선 두 번의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모두 실수가 나왔다. 오륜마크 하나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소치), 성화대 하나가 올라오지 않았다(밴쿠버).

“한국은 첨단기술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개회식에서 기술적인 실수가 생긴다면 국가적 망신이다. 1월 15일부터 3주간 매일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를 했다. 3초 단위로 콘티를 짰다. 2시간 동안의 TV중계 컷 하나하나 모두 계산된 것들이다.”

―개회식 전날 밤에 마지막 성화 주자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남과 북 선수 한 명씩으로 변경됐다던데….

“조직위의 제안에 당황스러웠지만 120개 계단을 남북한 선수가 성화를 들고 올라가는 모습이 괜찮을 것 같아 승낙했다. 하지만 문제가 많았다. 리허설이 필요했는데 두 선수가 직접 나와 연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작진 중 체육과 출신 여성 두 명을 데리고 리허설을 하고 영상을 찍었다. 개회식 1시간 전 두 선수에게 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다. 또 다른 문제 하나는 선수들의 몸무게였다. 계단이 버틸 수 있는 하중은 100kg이었다. 두 선수가 한꺼번에 올라가니 몸무게가 걱정됐다. 부랴부랴 몸무게를 물어봤다. 다행히 두 사람 합쳐 120kg 정도였고 계단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발 사이즈도 걱정이었고, 몸에 맞는 성화 주자 유니폼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120개 계단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두 선수에게 미리 인이어를 끼워줬다. 계단을 오를 때 ‘하나 둘’ 구령을 인이어를 통해 들려줬다. 10계단 정도 남았을 때 뒷모습을 보니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힘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고 소리 질러줬다.”

―그 역할은 원래 안정환의 몫이었나.

“정환 씨에게 참 미안하다. 리허설 때문에 그 계단을 3일간 새벽마다 뛰어 올라갔다. 개회식 전날 만나 변경 사항을 말해주니 ‘나보다 남북한 선수가 올라가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얘기해줬다.”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왜 굳이 한국 가요를 부르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많다.

“왜 음악을 고민하지 않았겠나.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를 선곡하기 위해 국내 음악평론가들에게 노래 10곡을 선정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매진’처럼 평화에 딱 들어맞는 가사를 가진 곡이 없었다. 다른 한 곡도 고려했는데 저작권료가 정말 비쌌다. 한국 노래가 좋더라도 외국인들이 처음 듣고 감동을 받기는 힘들다. 노래는 역시 널리 알려진 곡이어야 했다.”

―개·폐회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

“조직위 개·폐회식팀의 오장환 부장은 내가 총감독이 된 뒤 지금까지 함께했다.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내 옆에서 조정자 역할을 많이 해줬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것이다.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공신이다.”

이 말을 하다 송 총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그 뒤 고생한 스태프 이야기에 다시 한번 목이 메어 인터뷰가 중단됐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제 폐회식만 남았다. 폐회식에서 주목할 점은 무엇인가.

“오늘부터 폐회식 리허설에 들어갔다. 흥겨운 파티 분위기로 즐겁게 만들려고 한다. 여러 장르가 융합된 공연을 보여줄 예정이다. 폐회식 주제인 ‘넥스트 웨이브(Next Wave·새로운 미래)’에 맞게 역대 올림픽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음악이 흐른다. 케이팝 콘서트도 제대로 할 예정이다. 폐회식에서도 와우 포인트를 많이 마련했지만 개회식의 인면조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디서 크게 호응할지 모르겠다.”

―폐회식도 끝나면 무엇을 할 계획인가.

“따뜻한 곳에서 한두 달 쉰 뒤 평범한 연기자, 제작자로 살고 싶다. 소극장에서 3명 정도 나오는 작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다 보니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사람이 살면서 벅찬 순간을 경험해 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제작한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가 처음으로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을 때 이후 개회식에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는 앞으로 국가적 이벤트가 열리면 책임을 맡은 예술가들을 끝까지 믿고 맡겨주길 희망했다. 이어 이번 개회식 성공에 대해 그는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분명 하늘이 도왔지만 3000여 명의 출연진, 스태프들이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한 결과다.
 
평창=김동욱 creating@donga.com·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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