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47>착한 게 먼저? 나를 지키는 게 먼저?
모범적으로 ‘나’를 지키게 하기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B라는 엄마는 “잘했어. 맞고만 있으면 바보야”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폭력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럴 때 뭐라고 해줘야 할까? 우선 “누가 감히 엄마의 이 소중한 아들을 때렸니?”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나도 때렸거든”이라고 하면, “아이고, 오늘 너희 둘 다 엄청 힘들었겠네”라는 정도로 대답한다. 아이 상처에 약을 좀 발라주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동호는 얼마나 다쳤는지 묻는다. 그리고 동호 엄마한테 전화해서 “애들이 이만저만해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동호 혹시 많이 안 다쳤어요?”라고 물어야 한다. 동호 엄마와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라면, 교사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이렇게 저렇게 됐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가 괜찮은지 한번 봐 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한다.
상대 아이가 먼저 때리거나 괴롭혀서 우리 아이가 대응하다가 밀치거나 때리게 된 것이라면 우리 아이를 너무 혼내서는 안 된다. 물론 “잘했다”라고 칭찬해서도 안 된다. 그릇된 가치관이 생기게 하지 않으려면 ‘부당하게 당하지는 마라’라고 가르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아이가 “걔가 먼저 때렸어”라고 하면, “그런 행동은 안 되는 거야. 그 아이는 그걸 배우고 고쳐야 해. 엄마가 네 엄마라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때리는 것은 안 되는 거야. 그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라고 해준다. “나도 걔 때렸는데?”라고 하면, “너도 너를 지키려고 한 행동인데,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 그런데 다른 방법들도 있어. 첫째는 말로 하는 것이 좋아. 기분 나쁜 얼굴로 ‘뭐야?’ 할 수도 있어. 그것도 ‘어디서 감히 나한테 이래?’ 하는 표현이거든.” 이렇게 가르쳐준다. 그러면 아이는 ‘우리 엄마는 나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네. 감히 누가 날 건드려’ ‘주먹을 날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구나’ 등을 배운다.
앞서서 여러 번 쓴 ‘감히’라는 단어가 좀 불편했을 수 있다. 여기서 사용한 ‘감히’는 내가 어디 유명한 집안의 자식이란 식의 천상천하유아독존, 안하무인의 ‘감히’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며 우리 부모에게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므로, 누구도 ‘나’라는 존재를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공격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때 ‘누가 감히 너를 건드려’와 동시에 꼭 해줘야 하는 말은 ‘너도 다른 집 아이를 감히 건드리면 안 돼’라는 것이다. 그 아이도 나와 같이 존엄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친절해야 한다, 배려해야 한다, 때려서는 안 된다, 물건을 뺏으면 안 된다,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거친 말을 하면 안 된다, 욕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덕목들이다. 착하고 모범적으로 키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직 어린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대응마저도 나쁜 행동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어떤 위기의 순간, 자신을 적절하게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누군가 부당하게 나를 때리거나 심한 말을 하면, 그것을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상황에 맞는 강도로 어떠한 형태든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라고 해야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래?”라고 하거나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라고 맞받아쳐서 ‘네가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어’를 분명하게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
누가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는,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꼭 주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왜 그렇게 하느냐” “기분 나쁘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상대방이 금방 깨달음을 얻거나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 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계몽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나를 기본적으로 보호하고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야지만 인간은 힘이나 체격과는 무관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가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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