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스물여드렛날 밤 열한 시
이웃집에선 장롱 문을 열고 이불을 꺼낼 때
나는 장롱 보자기 속 아버지를 깨운다
招魂 먹물 漢字 몇 글자는 싫다
일 년에 세 번반이라도 얼굴 마주하고 싶다
☞ 초혼 :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 죽은 사람이 생시에 입던 윗옷을 갖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 서서,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 부분을 잡은 뒤 북쪽을 향하여 ‘아무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세 번 부른다.
마흔아홉으로 이승(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소풍 떠난 푸른 청춘
세월은 거꾸로 흘렀나보다
이젠 나보다 젊어져버린 影幀사진 속 아부지
손끝이 파르르 떨려온다
가슴은 시린데 눈언저리가 뜨겁다
☞ 영정 :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쓰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족자.
오가는 차표 예매는 못해드렸는데
경로우대증으로 찍고 오셨나보다
촛불이 흔들린다
아부지가 자리에 앉으시는 게 맞다
두 손으로 수저를 얹어드리고 뒤돌아선다
탕국 드리슨 소리가
술잔 내려놓는 소리가
하얀 알밤 깨무는 소리가
아린 가슴으로 까맣게 들여온다
☞ 아리다 : 형용사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다.
☞ 까맣다 : 거리나 시간이 아득하게 멀다. ‘가맣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가만가만 영정사진을 접는다
잔을 내린다
묵혀 온 두꺼운 그리움이
나를 飮福한다
☞ 음복 :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