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

婚姻禮節 常識 - 李基源<경기지회>

꿈 꾸는 소년 2012. 1. 19. 16:49

요즘의 혼인은 워낙 시대 潮流를 따르다보니 전통적인 禮節을 찾기가 힘들어 졌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 속에 우리것만 고집할 수 없다 해도 최소한의 우리의 固有한 예벌문화는 있는 법이니 아무리 서구화 됐다 해도 亞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於此彼 되돌릴 수 없다 해도 몇 가지 留意해야 할 事項이 있어 소개해 본다.

 

 1. 혼인식의 신랑시부는 男東女西가 맞다.

 

 옛 혼례에서 신랑신부의 옷차림은 堂上 벼슬아치의 관복으로 잠시나마 그만한 禮遇를 받았다. 그래서 초례청에서는 당연히 上席이므로 신랑은 동쪽에 신부는 서쪽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말하면 병풍의 왼쪽이 신랑자리이고 오른쪽이 신부자리로서 자연스럽게 男左女右가 된 것이다. 이것은 격식이 엄격한 서양을 비롯해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왜 지금의 우리 혼례만 반대가 됐는지 모를 일이다. 당연히 주례의 왼쪽이 신랑이고 오른쪽이 신부이며 이에 따라 혼주와 하객의 자리도 정해지게 된다.

 아마도 두한말 교회에서 서양식 혼례를 시작할 때부터 생각 없이 따라한 것이 어느덨 慣習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2. 幣帛이나 壽宴의 좌석은 男左女右이다.

 

 폐백이나 수연에서 웃어른에게 잔을 올릴 때 부모님이라면 웃어른의 좌석을 기준으로 아버지는 왼쪽에 어머니는 오른쪽에 앉는 것이 남좌여우이다.

 이때 잔을 올리는 아랫사람도 '남좌여우'로 하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 보는 상충되는 결과가 나오므로 웃어른을 따라 남우좌우로 하면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마주보게 된다.

 이것이 옛 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法式이나 현재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잔을 올리고 받는 實情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儼然히 남동여서인 것을 죽은 사람과 같이 남서여동으로 할 수는 없다.  

 옛 프랑스 귀족에서 출발한 서양예절의 엄격함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하나라의 문화수준에서 먹고사는 생존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격식과 품위의 一貫性을 갖추는 예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 신부집에서 자는 것이 맞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신랑집을 먼저 갈지 신부집을 먼저 갈지 망설이면서 괜한 오해를 일으키는 일이 있다.

 결론은 신부집이다. 옛 부터 혼례를 치르고 나서 신부집에서 첫 밤을 지내고 다음날 신랑집에 가는 것을 于禮라고 했다. 그러므로 신부집에서 자고 다음날 시부모에게 부부로서 정식 인사를 올린다면 여러모로 合當하게 된다.

 

 

 4. 幣帛

 

 며느리가 시댁 어른에게 처음 인사드리는 것을 現舅姑禮라 하며 이때 올리는 음식을 폐백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 같이 혼인식을 끝내자 마자 바로 폐백을 올리는 것은 비록 그럴 수 밖에 없다 해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 절차가 반장난 처럼 되다보니 敬虔함이란 찾아 볼 수 없고 景況 중에 기껏 시댁어른들을 한꺼번에 인사한는 것 밖에 없다.  또 양가 어른 모두에게 하는 경우는 폐백이라는 내가 준 선물을 내가 도로 받는 격으로 여간 모순이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하객들이나 여유 있게 접대하고 신혼여행이 끝나 처가에서 자고 온 아들 내외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받는 것이 차라리 더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이때 폐백을 받아 일가가 모여 술안주로 談笑하며 德談을 주고 받는다면 좋지 않겠는가. 물론 여건이 맞아야 되겠지만 필자의 소신에서 겪은 경험을 적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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