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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장인순 前 한국원자력연구소장

꿈 꾸는 소년 2012. 2. 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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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4(월)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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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장인순 前 한국원자력연구소장

한국 원자력 개발의 산증인인 장인순 박사. 평생 원자력과 함께 살아온 노과학자는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과는 다른 안전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며 “방사성 물질 누출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구상에서 가장 적다”고 말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71)은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핵 전공 과학자 유치 프로젝트에 따라 스카우트돼 1979년 원자력연구소에 들어왔다. 2005년 소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핵연료 제조 공정 국산화, 한국표준형 원자로 개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개발 등 한국 원자력 기술 개발을 이끈 원자력계의 산증인이다.

원전 사고 공포가 한반도에까지 밀려들고 있는 요즘, 평생 원자력과 살아온 과학자인 그를 1일 서울에서 만났다. 정부대책회의에 참석하고 대전 집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원전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고 하자 그는 대뜸 “한국은 정말 억세게 운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후쿠시마 원자로 모델과 우리 모델이 안전도 면에서 완전히 다른 모델이라는 설명이었다.

“원전 모델은 크게 체르노빌 사고를 냈던 ‘흑연감속로’와 이번에 사고가 난 ‘비등경수로(BWR·Boiling Water Reactor)’, 우리가 쓰는 ‘가압경수로(PWR·Pressurized Water Reactor)’ 등 세 개로 나뉜다. 체르노빌은 감속재(핵연료인 우라늄이 중성자와 반응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것. 보통 흑연이나 물을 쓴다)로 흑연을 썼는데 고온에서 노심(爐心·reactor core)이 녹으면서 흑연에 불이 붙어 화재와 함께 폭발해 최악의 사고를 냈다. 당시에는 원자로를 보호하는 격납고도 없었다. 현재 지구상의 흑연감속로는 거의 폐쇄됐다.”

설명이 이어졌다.

“비등형과 가압형은 감속재로 흑연이 아닌 물을 쓴다. 그래서 대형폭발 우려가 적다. 비등형은 원자로로 끓인 물을 바로 증기로 만들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지만 가압형은 원자로로 끓인 물(1차 계통)과 터빈을 돌리는 물(2차 계통)이 다르다. 원자로로 끓인 물에 거대한 압력을 가해 바로 증기화하지 않고 열(熱)만 다른 물로 옮긴 뒤(열전달) 그 물을 증기화해 터빈을 돌린다. 원자로로 끓인 물과 전기를 내는 데 쓰이는 물이 완전히 다른 물인 데다 서로 넘나들 수 없게 분리되어 있어 원자로 내 핵연료가 손상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없다. 일본은 51기 원자로 중 30기가 비등형이다. 우리는 중수(heavy water)를 쓰는 월성 1∼4호기를 포함해 21기 모두가 가압형이다.”

―일본은 왜 비등형을 썼나.

“후쿠시마 원전을 지을 당시인 1970년대만 해도 차이가 별로 없다고 알려졌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안전이나 효율 면에서 가압형이 낫다는 게 확인되면서 비등형 비율은 현저히 떨어졌다. 우리는 후발주자로서 더 앞선 신기술을 채택할 수 있었다.”

장 박사는 “게다가 가압형 격납고는 돔 형태인데 후쿠시마 사각형 격납고에 비해 무려 5배나 크다. 그만큼 외부충격이나 내부압력에 안전하다”며 “원자로를 닫거나 끌 때 쓰는 제어봉도 후쿠시마 것은 밑에 있어 전기가 끊어지면 속수무책이지만 우리 것은 위에 달려서 전기가 꺼지더라도 수동으로 내리꽂는 형태로 작동시켜 원자로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냉각수가 공급이 안 되면서 핵 연료봉을 싸고 있는 튜브가 공기에 노출돼 물과 반응해서 수소가스를 발생시켜 수소폭발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수소가스가 발생하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제거하는 시스템이 있다. 일본은 없었다”고 전했다.

―중국 원전은 어떤가.

“중국도 모두 가압형이다. 이 점도 천만다행이다. 최악의 사고가 나도 원자로만 버리지 주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미국 스리마일 사고가 대표적이다. 가압형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고였지만 격납고가 커서 원자로를 완전히 보호했고 방사성 물질도 유출되지 않았다. 주민 20만 명이 대피하고 원자로는 버렸지만 사람은 한 명도 안 다쳤다.”

그는 “이번 사고 원인이 원자로 문제가 아니라 원자로 밖에 있는 비상전원이 지진해일(쓰나미)에 망가지면서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 공급이 안 돼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처음에 사고가 났을 때 나는 일본인들이 어떻게든 발전기를 끌어와 전력복구부터 할 줄 알았는데 사고 엿새 후에나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해가 안 갔다”고 지적했다.

―왜라고 생각하나.

“기당 건설비가 3조∼5조 원에 달하는 원자로를 살려보려고 애쓰다 시간만 지체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 것 같다. 다행히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본다. 어떻든 원전 선진국인 일본으로서는 국제사회에 치명적인 불신을 줬다.”

―방사성 물질 누출이 특히 걱정되는데….

“이번 사고에 관한 한 지구상에서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북극에서 보면 지구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바람이 한국에서 일본 쪽인 편서풍으로 분다. 한국에 일본의 방사성 물질이 온다면 북반구에서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다. 누출 방사성 물질의 수만분의 1밖에 안 남는다. 여기에 수증기로 확산되는 것들은 오래 못 날아간다. 설사 몸 안에 들어왔다 해도 요오드나 크세논(제논)은 반감기(half life·원자 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 짧을수록 방사능을 빨리 잃는다)가 매우 짧아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세슘은 물에 녹아 대부분 소변으로 배출된다. 방사성 물질은 마스크만 하고 다녀도 막을 수 있고 채소에 묻은 것은 물로 충분히 씻으면 된다.”

―최악의 맹독물질로 알려진 플루토늄도 나왔다고 하는데….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다 쓰고 꺼내 분석해보면 플루토늄은 항상 1% 정도가 생긴다. 나오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이번에 나온 것도 극히 적은 양이다. 몸에 들어가면 물론 좋지 않지만 지금 우리 몸에 바로 들어갈 확률은 제로다. 또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바다를 통해 온다 해도 수백만 배 희석된 상태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바다로 오는 것은….

“다행히 태평양이라는 큰 바다가 있어서 거의 모두 가라앉아 소멸된다.”

장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핵물질을 가장 많이 만진 사람이다. 연구실에서 핵물질이 엎질러져 온몸에 묻고 호흡기로도 들어간 적이 있다. 코를 푸니까 시커먼 우라늄이 나왔다. 전신 스캐닝으로 확인했는데 며칠 후 다 빠지고 없더라. 평생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어 살아온 내가 70이 넘어도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가.”

비전문가인 기자로서는 “괜찮다” “걱정 말라”는 그의 말에 반박할 지식이나 자료가 없다 보니 선뜻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을 읽은 듯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일반인은 1년에 방사선 피폭 허용치가 1000μSv(마이크로시버트)로 가슴 X선을 20번 찍을 때 맞는 양이다. 나 같은 종사자는 5만, 후쿠시마처럼 사고 발전소 종사자들은 25만으로 규정되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일반인도 5만까지는 괜찮다는 의미인데 일반인들의 수치를 확 낮춰놓은 것은 그만큼 엄격하게 보호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목숨은 누구나 하나밖에 없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핵 물질을 다루는 핵 과학자들이야말로 안전에 제일 민감하다. 그런 과학자들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겠다는 것인가.”

그는 반핵을 주장하는 환경단체 사람들에게도 할말이 많았다.

“원전 반대를 주장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연구소에 와서 시위를 벌이는데 그때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신들은 넥타이 매고 안전, 안전 하지만 나는 작업복 입고 이 안에 있는 3000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도 다 자식 있는 사람들이고 목숨이 하나뿐인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위험도로 따지면 원전이 아니라 핵무기가 더하다. 북한 핵실험에는 침묵하는 사람들이 반원전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

―최근 독일은 원전 반대 여론이 정치권까지 흔들었다.

“정치문화가 다르다. 국경 하나 맞대고 있는 프랑스는 세계 제1의 원자력국가다. 독일 과학자들 만나 보면 ‘정치놀음으로 원자력이 다 죽었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다. 프랑스는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자로가 많다. 모델도 거의 가압형이다. 전력의 80%를 원자로로 해결하고 있고 전력수출이 총수출의 8%나 된다. 사고 난 데만 보지 말고 잘하는 곳도 들여다보자. ‘일본도 사고를 냈는데 하물며 우리는…’이란 말은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얼마나 원전 선진국인지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그는 10년만 지나면 한국이 세계 원자력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번 일로 결국 세계 원자력시장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경쟁할 것이다. 원자력은 무려 200만 개의 부품이 필요한 산업이다. 연관되지 않은 과학이 없을 정도인 종합과학이다. 이번 아랍에미리트 수출은 우리 과학 수준을 세계적으로 알린 중요한 계기였다. 일본은 한국이 자기들보다 먼저 원자력 수출을 했다고 내심 기가 꺾였는데 이번 사고로 더 꺾였다.”

그는 현역 시절 휴일도 없이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11시에 퇴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를 밀어붙인 동력은 원자력이 바로 후손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가 오로지 의존할 것은 사람의 두뇌밖에 없는데 원자력이 바로 ‘두뇌 에너지’다. 석유나 석탄은 언젠가 바닥난다. 태양열 에너지는 지금 전기값보다 20배나 비싸다. 앞으로 에너지강국이 세계강국이 된다는 점에서 원자력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거다.”

그렇다고 원자력만이 유일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상에 인공태양을 만들어 전기를 공급하는 핵융합의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원자력 수준처럼 되려면 100년은 걸린다. 그때까지는 원자력이 최선이다.”

어떤 최악의 상황도 보는 사람에 따라 180도 바뀐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과학의 발전을 믿는 낙관주의자였다.

“인간이 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나눈다면 원자력은 마지막에 속한다. 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 운전을 금지시킬 수 있나. 중고차라도 제대로 정비하고, 모범운전자가 핸들을 잡으면 사고가 안 난다. 체르노빌 사고가 그랬듯 이번 사고로 원전에 대한 긍정 여론이 주춤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안전 시스템은 더 강화될 것이고, 기술력도 발전할 것이다.”

그의 오른팔은 온통 화상흉터가 덮고 있다. 왼쪽 허벅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학 시절 핵연료 제조 과정에 필수적인 불소 실험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 그는 장기간 피부이식수술을 받으며 결국 박사논문을 마쳤다. 그는 “포기하면 평생 실험실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공포는 맞닥뜨려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원자력을 쓰지 말고 전기를 좀 아껴 쓰면 안 될까.

“그것은 계획정전밖에 없다. 아무리 아낀다고 해도 국민들이 컴퓨터나 TV를 끌 수 있겠는가. 전기 사용을 줄이려면 값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지난 30년 동안 소비자 물가가 220% 오르는 동안 전기값은 5.6%밖에 안 올랐다. 서민경제를 위해서도 원자력이 경쟁력이다. 원자력이 없으면 지금 전기 값의 두세 배를 내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의 질은 세계에서 최고다. 1년에 18분 정전된다. 미국만 해도 100분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원자력 덕분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장인순 전 원장::

―1940년 출생
―1964년 고려대 화학과 졸업(66년 동 대학 석사)
―1976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이학박사
―1977년 미국 아이오와대 화학과 박사 후 연구원
―197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핵화공연구실장  및 화공재료연구부장
―1999∼2005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 원자력국제협력재단 이사장
―2005∼200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
―현재 대덕원자력포럼 회장

▲1985년 국민훈장 목련장
▲2005년 과학기술부, 한국과학문화재단 선정 ‘가장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 인 10인’, 과학기술최고훈장 창조장 수상
▲2008년 자랑스러운 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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