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4>‘소리의 정원’ 소쇄원
동아일보DB
많은 사람이 소쇄원의 조경에 대해 탄복하지만 소쇄원의 백미는 소리를 듣는 것에 있다. 소쇄원은 듣는 정원이요, 소리의 정원이고, 소리를 위한 정원이다.
소쇄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뉜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공간인 화계와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 등이 내원에 속하고, 외원은 활을 쏘았던 후간장터, 입구의 대나무 숲 등이다.
소쇄원 입구에는 높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다. 원래 두 사람이 길을 가면 조금 넉넉한 정도의 길이었다. 기묘사화 후 낙향해 소쇄원을 지은 문인 양산보는 이 좁은 길 양편에 넓은 대나무 숲을 조성했다. 정원을 들어가는 사람들은 먼저 이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색과 소리의 조화를 먼저 안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의 끝은 계류의 전모가 다 드러난 탁 트인 지형과 마주한다.
사실 내원의 지형은 탁 트였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작은 계곡에 불과하다. 이 협소한 계곡이 탁 트였다고 느끼게 하는 건 순전히 비좁은 대숲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강한 대비를 통해 심리적으로 내원에 개방감을 주었다. 동시에 우리는 거기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 이 물소리는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옥타브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오곡문 담장 밑에서부터 바로 계곡을 흐르는 큰 물소리고, 다른 하나는 수로를 이리저리 돌리고 돌려서 대봉대를 거쳐 이어져 계곡에 떨어뜨리는 낮은 물소리이다.
이윽고 다리를 건너면 물소리와 대숲의 바람소리가 장엄하게 연주된다. 그러나 아직 소쇄원의 연주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정원의 정점은 광풍각이다. 우리가 이 광풍각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대숲의 바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작은 수로의 낮은 물소리까지 장엄한 천지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풍각의 자리는 이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로열박스인 셈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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