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홍찬식 칼럼]조용기 이후의 한국 교회

꿈 꾸는 소년 2012. 2. 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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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3(화) 19:5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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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조용기 이후의 한국 교회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제 할 일은 끝났다”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 조 목사는 한국 교회의 고속 성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목회 활동은 전도사 시절인 1958년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 산기슭의 작은 주택에서 시작됐다.

‘양적 성장의 모델’ 시효 끝났다

‘첫 예배에 다섯 사람이 우리 교회에 나오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조용기 전도사에게 전화를 걸어 설교를 부탁했다. 보리쌀 한 되를 사다가 밥을 짓고 조 전도사를 기다렸다. 저녁 7시 전에 오라고 했더니 조 전도사는 6시도 되기 전에 땀을 흘리며 뛰어 올라왔다. 그러나 8시가 다 되어도 약속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조 목사의 장모이자 함께 교회를 개척했던 최자실 목사(1989년 작고)가 자서전에 기록해 놓은 첫 예배 모습이다. 어쩔 수 없이 최 목사의 세 자녀와 함께 예배를 먼저 시작했다. 뒤늦게 한 사람이 도착했다. 그의 첫 설교를 들은 사람은 식구를 포함해 5명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오늘날 75만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다.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일찍부터 역(逆)선교에도 눈을 돌려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파했다. 브라질 예배 때는 150만 명의 인파가 집회장소를 찾았다. ‘데이비드 용기 조’ 목사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그의 퇴장은 한국 교회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1950년 6·25전쟁 직전 60만 명에 불과했지만 1985년 인구센서스에서는 648만 명으로 급증해 있었다. 1960, 70년대 한국 개신교의 경이로운 성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오던 시기였다. 낯설고 살벌한 도시의 삶은 불안하고 힘들었다. 교회는 이들의 등을 다독여주는 정신적인 안식처 역할을 했다.

종교사회학자인 이원규 감리교신학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급성장한 교회는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면 된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을 교인들에게 심어주면서 철저하게 물질적축복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경제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교회에는 교인들이 증가했다. ‘물질적 축복’이란 교회에 나오면 잘살 수 있게 됨을 뜻한다. ‘잘살아 보세’라는 당시 표어와 일치하는 성공 비결이었다. 그 시대에 맞는 종교적 역할을 통해 교회 역시 빠르게 성장했던 것이다.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는 그 모델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은 1990년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개신교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5년 876만 명이던 국내 개신교 교인은 2005년 861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한국의 종교는 과거와 같은 성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유럽에서는 종교가 날로 쇠퇴하고 있고 미국에선 정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소득이 늘어나고 경제가 여유로울수록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쇠퇴하는 종교, 새 역할 찾아야

한국 개신교계는 잇따라 비상등이 켜지고 있었는데도 기존 성장의 틀에 매몰되는 오류를 범했다. 갑자기 돈이 많아진 곳에서 흔히 나타나는 권력 다툼이 추악한 단계까지 이르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나님에게 바쳐야 할 교회를 세습하려는 움직임도 벌어졌다. 교세 확장을 위한 공격적인 전도 방식은 비종교인의 거부반응을 양산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도 도마에 올랐다. 개신교인인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개신교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면서 종교의 생명인 신뢰도가 크게 흔들렸다.

조 목사 역시 전부터 가족경영 등 교회 사유화 논란에 휩싸였으며 ‘대통령 하야(下野)’ 발언 등이 겹치면서 매끄러운 은퇴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시대적 역할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그를 따랐던 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계층이었다. 어려웠던 시절에 교회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고, 세계 속에 한국을 널리 알리는 ‘선교 한류’를 일으켰다. 마지막 순간에는 평생 쌓아온 세속의 가치들을 버리는 용기와 겸허함을 보여주었다.

조 목사의 퇴장은 한국 교회의 성장 신화가 막을 내렸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한국 교회가 새로운 소명을 떠맡아야 하는 과제도 일깨워주고 있다. 모두가 돈과 물질을 좇는 시대에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선사하는 개신교 본연의 역할이 절실하다. 최근 논란을 부른 개신교의 모습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개신교와 교인들의 긍정적인 활동이 훨씬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조 목사의 은퇴 선언이 개신교 쇄신과 위기 극복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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