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몸을 무능하게 하는 디지털시대… 여성의 심신이 죽어가고 있어요

꿈 꾸는 소년 2012. 3. 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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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7(수)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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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무능하게 하는 디지털시대… 여성의 심신이 죽어가고 있어요”

동아일보에 ‘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칼럼을 연재하는 고전 평론가 고미숙 씨는 “그 동안 몸에 관한 연구를 전문적인 의료인들에게만 맡겨 놓았지만 이제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우리는 몸에 대한 각종 수치가 정상이면 건강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몸이 잘 순환되면서 외부와 잘 소통할 수 있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이제 몸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해요. 질병과 죽음도 배척해야 할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6일부터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를 연재하기 시작한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52). 그는 ‘열하일기’ ‘임꺽정’ 등 한국의 고전을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풀어내 대중에게 고전의 진면목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10월 말 펴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그린비)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한의학서를 넘어선 삶의 비전으로 읽어내 호평을 받았다.

“10여 년 전 몸속에 작은 종양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병원에 갔더니 그냥 잘라내라고 하더군요.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을 내가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에 반감이 생겼습니다. 질병과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운명적으로 ‘동의보감’을 만났죠.”

고 씨는 “그동안 우리는 몸에 대한 연구를 의료계에만 맡겨왔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어왔다”고 말했다. 현대 의학이 온갖 질병과 이를 없애기 위한 각종 약물 및 수술 기법에만 집중하면서 전문성의 벽은 더욱 견고해졌고, 병과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됐으며, 몸의 주인이 아니게 된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현대 디지털 문명은 몸의 소외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 있다 보니 사람들은 손가락만 사용하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되니 뇌의 기능도 떨어진다. 그러면서 몸이 점점 무능해진다는 것. 고 씨는 “몸의 소외는 특히 여성에게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순환이 안 되고 그러면 자궁이나 난소 쪽에 병이 생깁니다. ‘알파걸’ ‘골드미스’처럼 성공한 여성들은 많아졌지만, 현대 여성의 몸은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어요. 몸이 아닌 몸매만 강조되죠. 운동도 몸의 순환이 아닌 살을 빼기 위해 하는 것이고요. 양기는 잃어도 젊어 보이기만 하면 되지요. 이처럼 자연과 괴리된 미를 추구하면서 여성의 몸은 무능해지고 약해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선 몸을 곧 한 사람의 인생, 하나의 우주로 바라본다. 인간 스스로 자연에 순응하며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지침들이 가득하다. 병이 생기면 단지 이를 도려내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라 병을 불러온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고치도록 한다. 고 씨가 연재를 시작한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학의 가르침을 통해 현대 의학과 디지털 문명, 사회적 시선에 빼앗겼던 몸의 주인 자리를 되찾기 바라서이다. 이와 함께 몸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까지 들여다볼 계획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학문이 인문의역학(人文醫易學)입니다. 그동안 밖으로 향했던 인문학의 방향을 우리 몸 안으로 돌려놓는 거죠. 몸이 곧 삶이고 사회이며 우주이니까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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