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당신이 權利를 抛棄하라.<2012.3.18 / 제24권 12호>

꿈 꾸는 소년 2012. 5. 15. 09:31

☞ <창 13:5~9> 아브람의 一行 롯도 양과 소와 帳幕이 있으므로 6.그 땅이 그들이 同居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家畜의 牧者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居住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親族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함께 同居할 수 없게 됨

 

 飢饉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 갔던 아브라함의 일행이 부자가 되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함께 동거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함께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所有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5~6절). 없는 것보다 소유가 많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소유의 풍성함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대가 많습니다. 7절을 보면 드디어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많은 六畜을 기르기 위한 풀밭을 놓고 아브라함의 家畜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금이 많고 소와 양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소유의 많음이 다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로 부터 유산을 많이 물려 받은 자녀들치고 재산 분배를 가지고 싸우지 않는 자녀들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재벌들도 보십시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볼 때에는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가지고 있지만 돈 때문에 법정에서 다툼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재벌들치고 재산문제를 가지고 다투지 않는 재벌들이 거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아버지와 아들 같고 어디를 가든지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던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소유의 많음이 함께 동거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서로 근심이 되고 다툼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딤전6:10). 왜 우리가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것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迷惑을 받게 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이 가시처럼 자기를 찌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 왜 다투지 말아야 하는가?

 

 그러면 소유가 많음으로 인하여 다툼이 생겼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에게 "우리 서로 다투지 말자"라고 提案을 합니다(8절). 왜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우리가 서로 다투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까? 

 

 첫째로, 한 친족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에게 서로 다투지 말것을 제안하면서 우리가 한 親族이기 때문에 다투지 말자!고 말합니다. 한 친족이란 무슨 말입니까? 한 조상으로 부터 나온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혈통을 가진 한 형제 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된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지체가 되고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한 형제된 우리들은 서로 다투어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이방인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곳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여 살고 있었습니다(7절). 그들은 이방인들 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볼 때에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다투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교회와 교회가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들이 우리의 삶을 注視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에게 '우리 서로 다투지 말자!라고 제안을 합니다.

 

 □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라

 

 하나님이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다툼을 피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다투지 않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자신이 먼저 땅을 선택 할 수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리를 자기 조카 롯에게 주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절)"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바로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땅을 선택 할 수 있는 권리를 조카 롯에게 먼저 준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싸움니까?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해를 안 볼려고 하니까 싸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장 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장 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양보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지만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권리를 포기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는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 할 때 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리 포기'란 단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취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권리 포기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것이 전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포기 할 때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이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리 포기는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 포기는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 왜 아브라함은 양보할 수 있었는가?

 

 왜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에게 "우리 싸우지 말자! 네가 원하는 땅을 먼저 가져라!"며 양보 할 수 있었을까요? 왜 아브라함은 자산이 주장 할 수 있는 권리를 내려 놓았을까요? 마음이 너그러워서 일까요? 아닙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이 보인 모습을 아십니까? 아니 자기 혼자 살아 남겠다고 자기 아내 더러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하라고 거짓말을 시킨 장본인이 아닙니까? 아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내를 지키고 보호해 주어야 할 남편이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많은 은금과 가축을 받고 자기의 아내를 팔아버린 破廉恥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상당히 약삭빠른 사람입니다. 아니 野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이 갑자기 변화되어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을까요? 그것은 애굽에 내려가서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내려간 아브라함이 비록 실수는 했지만 그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새롭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세계 최강인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 앞에서 혼줄이 나서 아내 사라를 돌려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나를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 애굽의 왕  바로 보다 훨씬 더 힘이 센 분이시구나! 그렇다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가 비록 메마른 광야를 선택하여 생활한다 할지라도 내가 어떠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나를 책임져 주시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의 실수와 거짓말에도 不拘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信實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능치못하실 일이 없는 그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권리 포기를 통하여 다툼을 피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삶의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