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2012.3.4 / 제24권 10호>

꿈 꾸는 소년 2012. 3. 18. 05:00

☞ <눅 9:28 ~ 36> - 榮光스러운 모습으로 變化되시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容貌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光彩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將次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別世하실 것을 말할새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본문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느 때에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까?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비로소 공개적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22).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려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 변화산의 영광

 

 그런데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29절). 相當한 기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예수님이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갑자기 예수님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로 예수님의 얼굴에서 빛이 났는지 아십니까? 마7:2에 보면 "그들 앞에서 變形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데 해와 같이  빛이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입으신 그 옷도 희어져 광채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아세요? 빛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실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실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장차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서 뵙게 될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계1:16). 그런데 예수님의 용모와 옷만 변화된 것이 아니라 구약의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30절).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만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그것은 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別世하실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31절).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건이 구약의 핵심이요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을 한 마디로 말하면 장차 메시야가 오실 것이고, 그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변화산의 영광을 통해서 당신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건이 구약 성경의 가장 핵심이요 중심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기도할 때에

 

 그런데 이런 영광스러운 체험이 언제 있었습니까? 언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임하였습니까? 언제 예수님의 모습이 해처럼 빛이 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도하실 때입니다. 깊은 기도 속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처럼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광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의 기적과 체험은 모두 기도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기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기적과 체험도 다 기도에서 비롯되었듯이 오늘 우리의 삶에 기적과 체험도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으셔야 합니다.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깊은 잠을 자다가 깨어난 베드로는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라고 표현을 했습니다(33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니까 아니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모세와 엘리야를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지어 이곳에 머물자는 提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過誤를 범한 것입니다. 왜 이것이 베드로의 과오이고 실수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시는 길을 가로 막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忘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고 변화산의 神秘한 체험 가운데 머무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변화산의 신비한 영광을 보고 恍惚한 분위기에 빠져 있을 때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구름은 언제나 하나님의 臨在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35절)" 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그 산 위에 올라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초막을 지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신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비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기독교는 모든 것이 신비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가 되면 안됩니다. 신비한 체험이 우리의 신앙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비를 따라 살아가면 안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本質입니다.

 

 □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36절을 보면 이제 변화산의 신비한 구름도 사라졌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졌습니다. 오직 누구만 보였습니까?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36절a)" 오직 예수만 보였습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그분의 종이요, 사환에 불과할 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예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만 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 드러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도 간증을 할 때에도 우리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시고 자랑이시고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삶의 이유이고 인생의 해답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만 보이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합나까? 주님은 보이지 않고 문제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이 실패합니까? 예수는 보이지 않고 성공과 재물과 명예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으 눈에 무엇이 보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