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이것이 성공이다<2012.3.4 / 제24권 9호>

꿈 꾸는 소년 2012. 3. 8. 14:49

☞ <신 34 : 1 ~ 12> 모세의 죽음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으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氣力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와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헤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와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업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다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을 보면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을 향하여 올라가 여리고 맞은 편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봅니다. 肥沃한 납달리, 그리고 波濤 넘설거리는 지중해의 파란 물결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세가 나가안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모세는 좌우로 140km를 보았고 전방으로 110km를 보았습니다. 이는 망원경으로도 보기에 불가능한 거리입니다. 모세의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 멀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가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과 3절에 "보이시고"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4절에도 "보게 하였거니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가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 너는 그리고 건너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느보산의 정상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4절)" 차라리 보여주지나 말지 보여주면서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이 정말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라며 따지지 않았습니다. 억울해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설득하고자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는 아무런 불평없이 여호수와를 안수하여 지도자로 세우고 백성들을 축복한 다음 느보산에 올라와 가안 땅을 바라본 후 조용히 죽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5절)" 성경은 분명히 모세와 죽음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기력이 약하여 노쇠하여 자연사한 것이 아닙니다. 7절을 보면 모세는 나이 120세가 되었지만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는 기력이 쇠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암에 걸려 죽은 것도 아닙니다. 헛발을 딛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죽음까지라도 순종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모세의 죽음은 오늘 무엇이 성공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왜 모세의 죽음이 성공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도 소원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간절히 구했습니까? 나로 요간강을 건너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신3:25).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간절한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斷乎하게 거절하였습니다(신3:26). 모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내 使命은 여기까지 구나, 내 사명은 아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나의 사명이 아니라 여호수와에게 맡기신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怨望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느보산에서 말씀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뜻,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뭔가 이루어지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의 성공은 나의 뜻, 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뜻을 죽어지고 나의 야망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둘째로,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 벳브올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습니다(5~6절). 그런데 오늘까지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죽고난 다음에도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아니하고 사라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조용히 모압 땅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 홀로 죽어간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인생을 결산하는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아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죽음은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평가 때문입니다.

 모세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이것이 성공이다" 라고 확신있게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때문입니다. 그이 생애가 마쳤을 때 성경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10절)" 그의 生涯 마지막에서 들려온 음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공동번역은 이것을 "야훼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표준새번역은 "주께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말씀하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강하게 浮刻되는 내용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과의 제일 친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출33:11에도 보면 하나님은 모세와 친구와 이야기하듯 모세의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씀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으면 "하나님께서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말씀하셨다"라고 기록되었겠습니까?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참 친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잘아노라'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스스로 내린 평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내리신 평가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죽음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인생의 죽음이후 어떤 사람으로 평가되실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로부터...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직장과 동료로부터...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아니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난 그 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모세처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는 칭찬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