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하 20:6, 12>
□ 羞恥를 당하지 아니함
오직 주만 바라보는 자들은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5편 3절에서 이런 告白을 하였습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시25:3)" 주를 바라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다윗이 언제 수치를 당하였습니까? 물맷돌을 가지고 골이앗을 향하여 나아갈 때 수치를 당하였습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다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자신을 찾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의 신분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미친사람 흉내를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으로 내려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였다가 애굽의 왕으로부터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는 자는 逼迫과 苦難을 받을 수는 있어도 수치는 당하지 않습니다.
□ 누가 주만 바라보는가?
1. 자신의 약함을 하는 자
왜 여호사밧이 오직 주만 바라보았는가? 그의 고백처럼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12절). 생각해보십시오. 쳐들어오는 세 연합군을 一擊에 물리칠 수 있는 군사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여호사밧이 그렇게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나아갔겠습니까? 아니 자신이 적군을 물리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고 한다면 온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성전에 모여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누가 주만 바라보며, 주를 의지하며 기도했습니까?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가 겸손하고,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가 기도의 무릎을 꿇습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자는 절대로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자신을 믿고 過信하다 깨어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고하지 못했고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며 세 번이나 부인을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가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함을 아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약함을 도리어 자랑하였던 것입니다(고후11:30). 아니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고후12:9). 바울이 왜 자신의 약함을 크게 기뻐하며 자랑하였을까요? 자신이 약한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고후12:9). 우리는 약한 만큼 주님을 바라봅니다. 약한 만큼 주님을 의지합니다. 약한 만큼 기도의 무릎을 꿇습니다. 약한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우리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강하게 생각하며 자랑하기 시작하면 자랑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이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을 치러온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
누가 오직 주만 바라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입니다(6절). 여호사밧이 하나님께로 자신의 낯을 향하며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호사밧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하늘의 하나님
여호사밧은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시니이까? 라고 말했습니다(6절a).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라는 말은 '여호와 주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니엘도 기도할 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단2:18). 시편기자도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라며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땅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이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2) 모든 민족과 列邦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6절b)"당시 사람들은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多樣한 신이 존재하고 각기 다스리는 분야도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알고 아세라가 주관하는 분야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그 시대의 사고를 뛰어넘어 지금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민족과 지역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알고 왜 外來 종교를 믿느냐며 따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십니다(렘23:24).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고 말씀하셨고 "또 네 씨로 말미암아 天下萬民이 복을 받을 것이라(창22: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救援 計劃은 모든 족속이, 천하만민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나라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사밧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만 바라본 것입니다.
3) 權勢와 能力이 많으신 하나님
"주의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여호사밧은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맞설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6절c). 우리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이 廣闊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죽은자도 살리시고 風浪도 잔잔케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被造物인 인간이 맞서러고 합니다. 아니 대적하며 그 이름을 嘲弄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자신의 생각을 따라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여호사밧은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믿었고 모든 열방과 민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알았고 권세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알았기에 오직 주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오직 주만 바라봅니까? 누가 오늘 자신의 낯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들고 간절히 기도합니까? 자신의 약함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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