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승리, 그 이후<2012.1.29 / 제24권 5호>

꿈 꾸는 소년 2012. 2. 5. 17:42

☞ <대하 20:26~30>

 

 모든 일에 성공과 실패가 있듯이 모든 전쟁에도 승리가 있고 패배가 있습니다. 그런데 승리하고 난 이후 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더 큰 패배를 당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들도 보면 고지를 향하여 올라가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보다 고지를 정복하고 하산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성공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승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승리 그 이후가 더 중요핮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오직 주만 바라봄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리품을 사흘 동안 거두어들일 만큼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부라기 골짜기 찬양

 

 그렇다면 승리에 陶醉되어 自慢에 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 많은 전리품을 나눠가지느라 서로 다툴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전쟁의 승리 이후 전리품 때문에 다투지 않았습니다. 승리에 도취되어 스스로 祝杯를 들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 이후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였습니다(26절). 언제 그들이 브라기 골짜기에 모였습니까?

 넷째 날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흘 동안 전리품을 취한 바로 그 다음날 브라가 골짜기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 이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승리의 골짜기에 모였습니다. 왜 유다 백성들이 브라가 골짜기에 모였습니까? 여호와를 頌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워 주심으로 승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승리의 현장인 브라가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송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과 온 유다 백성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금식하며 오직 주만 바라봄으로 죽음의 골짜기가 축복의 골짜기가 되게 한 것입니다. 절망의 골짜기가 되게 한 것입니다. 절망의 골짜기가 찬양의 골짜기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브라가 골짜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이 아골 골짜기와 같고 죽은 해골이 亂舞했던 에스겔 골짜기와 같은 곳일지라도 오직 주만 바라봄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는 브라가 골짜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골짜기에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는 찬양이 울려퍼지게 해야 합니다.

 

  □ 승리의 행진

 

 승리의 현장인 브라가 골짜기에서 여호와를 송축한 그들은 여호사밧을 선두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27절).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즐겁게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 즐거움, 승리의 歡喜는 누가 주신 것입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27절b)"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군을 이기게 하심으로 그들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누렸던 이 즐거움과 환희는  바로 이김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환희입니다.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매일 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들에게 이 승리의 환희가 없습니다. 승리의 행진이 없습니다. 승리의 노래가 없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승리의 환희가 없습니까? 왜 이런 감동과 감격이 없습니까? 영적 전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자에게는 반드시 승리를 하든지 패배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하는 자만이 승리의 환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행진을 하는 자만이 승리의 행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영적 전쟁을 하십시오. 영적전쟁을 하는 자만이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승리의 예배

 

 승리의 환희 가운데 승리의 행진을 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들은 곧 바로 여호아의 전으로 나아갔습니다(28절). 승리의 현장인 브라가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도 하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왜 그들은 곧 바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갔을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승리 그 이후에도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은 예베로 시작하여 예배로 마쳤습니다. 전쟁의 시작과 마침이 바로 예베였습니다. 우리도 현장에서 승리하였다면 반드시 주의 날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승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어 주신 은혜와 축복은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습니다.

 

  □ 세상을 두려워하게 하라

 

 승리, 그 이후 하나님을 잊지 않고 또 다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을 예베할 때 이방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28절). 왜 이방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끝난 전쟁의 모습을 보면서,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난 전쟁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을 이기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봄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하는 자입니다.

 

  □ 四方에 平康을 주시니라

 

 승리 그 이후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방의 평강을 주셨습니다(30절). 전쟁에서 승리 이후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나라를 泰平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방의 평강이란 무엇일까요? 동서남북의 지형적인 평강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사방의 평강은 우리의 모든 삶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삶의 영역의 평강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방의 평강입니다. 내 육체만이 아니라 내 마음만이 아니라 내 영혼도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내 가정도 평안해야 하고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도 평안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평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평강을 주시는 이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누가 이 사방의 평강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는 자입니다. 그리고 승리 그 이후에 변함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이 무너졌다면 아니 사방의 평강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다면 다시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예배가 회복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방의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