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용]김현유 구글 본사 상무

꿈 꾸는 소년 2012. 10. 1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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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5(월)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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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용]김현유 구글 본사 상무

김현유 구글 상무는 막힘없이 줄줄 답변을 풀어 내는 달변가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말이 많고 나서기 좋아해 ‘나댄다’ ‘오버하는 녀석’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중요한 미국에서 일하면서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미국 월스트리저널(WSJ)은 최근 TV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등 뉴미디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올가을 들어 18세 이상 TV 시청자가 지난해에 비해 11% 감소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TV의 전성시대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 구글은 오히려 TV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에서 구글TV의 아시아 태평양 사업 제휴 책임자로 일하는 미키 김(한국명 김현유·36) 상무는 “인터넷의 방대한 콘텐츠와 접근성, TV의 대중성이 결합하면 새로운 ‘TV 혁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을 포함해 삼성전자 LG전자 소니와 같은 굴지의 전자회사들이 웹과 TV를 결합한 차세대 TV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글코리아의 ‘독도’ 회의실에서 김 상무를 만났다. 그는 구글이 스마트폰에 이어 차세대 미디어로 밀고 있는 구글TV의 시장 개척을 위해 한국 일본 중국 전자회사와의 제휴를 이끌어 낸 ‘구글TV 연합군’의 산파 역할을 했다. 김 상무는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이제는 TV의 차례”라고 강조했다.

―TV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된 건가

“지상파 중심 TV는 1980년대 케이블채널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CNN, ESPN, HBO처럼 뉴스 스포츠 영화에 특화된 케이블채널이 지상파를 죽일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공존하는 생태계가 형성됐다.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졌다. 이제는 웹에서 온갖 동영상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케이블, 위성방송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소화하려면 TV가 달라져야 한다. 싸이의 공연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볼 바에는 대형 스크린에 음질이 뛰어난 스피커가 달린 TV가 낫다. 새로운 TV 생태계를 만들자는 게 구글TV의 아이디어다. 구글의 장기인 검색 알고리즘을 이용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 주고, TV에 맞게 인터넷과 안드로이드 앱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여 주는 플랫폼이다. 예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다. 이제는 TV 칩셋과 하드웨어 기술, 인터넷 속도가 개선돼 가능해졌다. TV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구글TV는 웹과 스마트폰의 모바일 생태계를 통합해 TV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TV 플랫폼이다.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구글의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을 쓸 수 있고, 구글의 앱스토어인 ‘구글플레이’에 올라온 동영상 앱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글TV가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의 태도와 삶까지 바꿀 수 있으리라고 보나.

“PC나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길 기대하진 않는다. 소파에 기대 앉아 방대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TV로 검색해 고화질 영상을 즐기는 ‘린 백(lean back) 경험’을 주자는 것이다. ‘카야킹’ 마니아라면 검색 창에 카야킹을 치고 유튜브, 방송사 등이 올려놓은 카야킹 동영상을 24시간 즐길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동영상이나 실시간 방송 연설도 시청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를 검색하면 신문 콘텐츠 사이트가 아니라 동영상 사이트로 바로 연결된다. 패션쇼를 검색해 보다가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바로 구입하는 일도 가능하다. 리모컨 대신 스마트폰으로 TV를 작동할 수도 있다.”

2010년 구글TV 1.0을 선보인 구글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비지오 등이 파트너로 참가한 구글TV 2.0을 공개했다. LG전자는 5월 미국 시장에 구글TV 플랫폼이 탑재된 제품을 선보였다.

―구글이 이달 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선 힘은 무엇인가.

“구글은 경영진이 큰 방향을 정하고 실무진인 매니저에게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한다. 실무자가 직접 최고경영자(CEO)에게 보고하고 결재까지 직접 받는다. 한번은 급한 결재를 위해 주차장에서 경영진을 찾아 보고한 적도 있다. 권한과 책임이 있으니 실무자들은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다. 에릭 슈밋 회장이 ‘당신들과 같은 똑똑한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격려한다.”

올해 1월 구글 공식 블로그에는 김 상무의 이름으로 구글TV 2.0의 파트너십이 공개됐다. 그는 “이런 중요한 일을 실무자 이름으로 내보내는 것이 구글의 기업문화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구글은 권한과 책임을 주되 성과 평가가 철저하다. ‘마음껏 해봐. 대신 책임져’라는 문화다. 한국에서는 회사에 얼마나 앉아 있느냐는 ‘페이스 타임(face time)’이 중요하다. 구글에서는 언제 출근해 어디서 일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개를 데리고 와서 일하거나 오후 세 시에 잔디밭에 누워 자거나 운동을 하는 직원도 있다. 업무의 20%까지는 본업 이외의 혁신적인 일을 찾아 해도 된다. 구글의 메일서비스인 지메일도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펀(fun) 경영’이라고만 보는데 실상은 다르다. 업무시간을 쪼개 새로운 일에 투자했을 때도 책임이 따른다. 성과가 없으면 본업에 충실한 사람보다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성과를 내면 합당한 보상을 받고 승진을 한다. 구글러(Googler·구글 직원들)가 스스로 받는 성과 스트레스는 위에서 압박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김 상무는 2007년 입사 이후 신사업 개발과 구글TV 프로젝트를 통해 3만여 명의 구글 직원 중 몇백 명에게 주는 최고경영진 상을 두 번 연속 수상하며 구글TV 아시아 태평양 사업제휴 업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따라하는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말이 많다.

“실리콘밸리를 무작정 따라할 필요는 없다. 한국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서운 추진력이다. 조직이 결정하면 엄청난 속도로 뛴다. 반면 개인이 뛰어나도 조직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밑으로부터의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 단위로 일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퇴근도 마음대로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개인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줘야 한다. 한국 직장인들도 조직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개인 하나가 작은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성과를 내서 나의 시가총액을 올리고 나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강점인 일사불란함과 속도에 미국 실리콘밸리 회사들처럼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혁신이 결합하는 한국형 혁신 모델이 필요하다.”

―창업 천국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강점은 뭔가.

“실리콘밸리는 세계 지도에서 보면 극히 작은 한 점에 불과하지만 구글, 애플, 페이스북, 오라클과 같이 세계 산업을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 실행력, 자본의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가진 사업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자가 수시로 만나고 협업하는 공간이 실리콘밸리다. 사업가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밑천이 없어도 투자를 받아 사업을 벌일 수 있다. 망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다. 창업과 투자를 통해 번 돈은 벤처캐피털이나 에인절 투자의 형태로 다시 신규 창업자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창업의 선순환이 일어나려면 한국에선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취직하면 다들 부러워하지만 창업을 했다고 하면 ‘얼마나 취직이 어려웠으면…’이라고 혀를 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 떳떳하게 번 돈이면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사람도 인정해 준다. 한국에선 성공한 창업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숨는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나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등과 같은 롤 모델을 찾기 어렵다. 성공한 창업가가 전면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젊은이들에게 창업의 꿈과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

김 상무는 올해 ‘꿈을 설계하는 힘’이라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책을 내놨다. 그는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자랑하려고 책을 낸 건 아니다”라며 “후배들이 꿈을 설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개인적 경험을 나누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꿈의 설계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의 세 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세계무대에서 여러 사람을 이어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설계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대학 2학년 때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원사 목록을 구해 15개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고 팩스를 보냈다. 이 중 보험사 한 곳에서 답이 왔다. 이렇게 해서 졸업 전까지 4개 회사에서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내 전공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대학생들의 질문을 받을 때 가슴이 아프다. 그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다. 꿈을 향해 가야 할 구체적인 설계도가 없다는 뜻이다.”

김 상무는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2002년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진학했다. 김 상무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이스라엘 영업을 맡게 됐을 때 다들 ‘똥 밟았다’고 했다”며 “하지만 부서 규모가 작아 2, 3명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장처럼 일할 수 있었다. 지금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협상 기술도 그때 유대인과의 업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을 전공한 ‘토종 한국인’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 출신이라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 됐다. 융합의 시대에는 아시아의 제조 회사들과 실리콘밸리의 소프트 회사들이 만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와 언어를 안다는 게 강점이다. 구글TV 아시아태평양 사업 제휴 업무를 맡게 된 것도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멕시코 출신 동료에게서 ‘너처럼 모국 기업과 함께 일하며 성과도 내고 싶은데 멕시코에는 좋은 기업이 많지 않다. 네가 부럽다’는 말을 듣고 뭉클했다. 한국 청년들이 무대를 크게 봐야 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할 때 어학 능력보다 의사를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인도계가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보이는 이유는 탄탄한 실력 못지않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이수지 씨(34)도 한국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MBA를 마친 뒤 트위터 본사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김 상무는 “요즘 한국의 청년들이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을 한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사회가 아픈 청년을 위로한답시고 더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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