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돌프 러멜
1950년 紅顔의 18세에 6.25전쟁에 參戰한 미군 兵士 루돌프 러멜은 1951년 1.4후퇴 때 불타는 서울 거리를 헤매던 고아들의 모습에 衝擊을 받아 인류를 전쟁의 慘禍에서 구하는 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決心했다. 그는 정치인도, 현장 평화운동가도 아닌 학자로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1996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에 오른 평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러멜은 이터넷 홈페이지(www.hawaii.edu/powerkill) 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형제여 말해주게. 독재자들은 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는가? 영화를 위해, 물질을 위해, 신념을 위해, 憎惡를 위해, 권력을 위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지르는 것이다."
2002년 '러멜의 자유주의 평화이론'이라는 책을 썼던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은 러멜의 尨大한 연구 결과를 두 문장으로 要約했다. "자유의 확산만이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인민 대학살을 막는 길이다. 민주주의 국가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專制정권의 민주화만이 전쟁예방의 바른 길이다."
▷ 390여만 명 동족이 희생 : 조봉암 동상 선정 반대이유 광고 동아<2011.1112.토>
▷ 한국전쟁 : 미군 사망자 3만6568명. 부상자 10만3284명. 실종자 8177명.
참전전사자 : 57,810명(신순범의원.2012.12.30.일.조선방송)
- 남북합쳐 50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삼천리강토를 폐허로 만들었다.<배인준 갈럼.2010.10.23.목.동아>
- 김정일은 1990년대 경제실패와 식량난, 배급중단으로 주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였다. 정치범 수용소 죽인 동포만도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 5만여 명의 외국인 사망.10만여 명이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 미국보훈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죽어가고 있다.<2011.12.26.월.동아.전면광고. 금란교회 동사목사 김홍도 감독>
▷ 인천상륙작선 : 1950.9.15.새벽.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8개국의 함정 261척, 한미해병대와 미군 7사단 7만5천여 명의 병력이 감행함.
▷ 피난민 240만명. 미망인 2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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