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2030 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7·끝>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

꿈 꾸는 소년 2013. 1. 26.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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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5(금)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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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7·끝>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

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이 지난해 말 도쿄의 총장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의 세계 질서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동남아국가연합이 함께 주도하는 다극화된 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제공

“2030년쯤이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회보장이나 연금을 둘러싸고 노인과 젊은층의 세대 간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신세대가 이른바 ‘젊은이의 봄’ 투쟁으로 노인을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적 경영 구루(스승)로 꼽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70)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현 사회보장 시스템을 지속하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며 머지않아 각국에서 세대 간 투쟁이 첨예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노인들이 선거에서의 표를 무기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도 낮고 집도 없으며 결혼도 못 하는 젊은층의 불만이 폭발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 도쿄(東京)에 있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실에 딸린 응접실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e메일 추가 인터뷰도 했다.

―세대 간 투쟁이라니 우울한 전망인데….

“현재 시스템이 지속되면 젊은층의 사회보장 혁명은 불가피하다. 역사적 실례도 있다.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초(超)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노인 연금을 그대로 뒀다. 젊은층이 노인을 챙기지 않고 버려 둔 것이다. 그러자 물가는 폭등하는데 연금 수령액이 그대로인 노인들의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젊은층은 택시를 타고 다녔지만 노인들은 10km 정도는 그냥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런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일본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운명론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여서 젊은층이 복지제도를 다 없애도 노인이 반발조차 하지 않을 것이지만….”

―2030년 세계질서를 어떻게 예상하나.

“완전히 다극화돼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함께 주도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중국은 한(漢)족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현재의 중국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30년 즈음이면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도 끝날 것이다. 가난한 중국이라면 지속적인 경제 성과로 현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갖게 되면 13억 인구가 자유 없는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징(北京)을 맹주로 한 ‘중화 합중국’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 홍콩 대만 티베트가 모두 합류해 좀더 큰 중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임하게 되면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전까지 EU에 합류할 개연성이 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과거 ‘유럽 공동의 집(ECH·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치안보협력을 포함한 지역공동체)’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EU와 러시아가 합치면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될 것이다.

아세안은 지금보다 결속을 더 강화해 EU보다는 작지만 인구 5억∼6억 명의 경제블록을 만들 것이다. 맹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인구 구조로 보면 장기 쇠퇴가 불가피하다. 한국은 북한과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2030년이면 이미 그 과정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인구 등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될 것으로 본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리스크는 어떤 것인가.

“미국은 러시아가 합류하는 유럽의 대두에 불안해 할 것이다. ‘그레이트 유럽’과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미국이 ‘애틀랜틱 오션(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세계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중국 국민은 평균 소득이 크게 오르면서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자유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가 세계 질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이다.”

―가까운 미래는 어떤가. 지난해 세계 주요국 지도자가 일제히 바뀌었는데….

“한동안 세상을 확 바꿀 리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본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땐 나라를 크게 변화시켰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라도 국가 체제를 크게 바꿀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국내총생산(GDP)을 4배 이상으로 크게 늘렸지만 앞으로는 무리다. 이제부터는 현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의 공공부문 채무 등을 감안하면 과거처럼 급성장할 재원도 부족하고 각종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도 힘이 모자랄 것이다.

유럽도 유럽중앙은행(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경제적 파탄을 피하면서 27개국이 단합해 살아남을 것이다. 미국도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미 무너진 상태로 20년간 표류한 일본은 앞으로 지지부진한 채로 살아남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나이지리아가 새로 성장 국가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거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에 필적하는 큰 판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도 국가도 야망에 불타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한동안 큰 변화가 없는 따분한 세계가 될 것이다.”

―저서인 ‘국가의 종말’에서 밝힌 ‘지역국가(Region State)’ 개념은 무엇인가.

“인터넷 시대에는 개인과 기업, 도시의 발언이 힘을 얻게 돼 있다. 예컨대 중국의 성장엔진인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롄(大連) 시는 인구 700만∼2000만 명으로 웬만한 국가 수준이다. 이런 도시는 베이징의 의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4000조 엔(약 4경8400조 원)에 이르는 세계의 유휴자금 유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더는 국민의 세금으로 번영하는 시대가 아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나라의 돈과 회사, 부자를 불러들여 번영하고 있다. 도시 간 경쟁이 역동적인 경제 발전의 원천이다. 이런 도시 주도의 발전은 국가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국가 개념은 이미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국가주의가 다시 강해지고 있지 않나.

“물론 국가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부록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다. 일본인도 영토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겪을 때나 국가의식을 가진다. 못난 정치가는 그걸로 불놀이하며 표를 모으려 한다. 정치가가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는 것은 현실이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잠깐 흥분했던 사람은 곧 식어 버린다. 섬 문제로 동북아시아 3개국이 싸우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섬 영유권 문제는 실효지배 원칙에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뿐 아니라 일본 국민도 우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20년간 밝은 얘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치무키(內向き·내향화)’, ‘우시로무키(後向き·퇴행화)나 다름없다. 못난 사람이 우경화하고 이웃나라를 탓한다. 열등감이 생겼지만 인정하기 싫으니 ‘한국은 뭐며, 중국은 뭐냐’라는 식으로 화풀이하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우경화이지만 안에서 보면 ‘초식화(草食化)’다. 야망이 사라져 나약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도전정신을 갖고 미국 등 어려운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은 중국이든 인도든 신흥 시장에서 조금만 나쁜 일이 터지면 짐을 싸서 돌아온다. 그러면서 ‘일본이 모두에게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당하고 있다. 더 강해져야 한다’라고 떠든다. 일본 잡지도 우경화해야 팔린다고 한다. 독자들이 ‘중국과 일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등의 기사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일종의 게임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집장들을 만나보면 우경화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미래는 어떨 것으로 보나.

“일본은 변화된 한국을 잘 모른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이겨 냈다. 특히 국제감각을 갖춘 뛰어난 인재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한국 대학생 50명과 일본 대학생 50명을 섞어 한 반을 만들면 상위 50등은 모두 한국 학생이 차지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양국 간 인재 격차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이렇게 변한 10년간 정체됐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뛰어난 글로벌 기업이 있지만 그 수가 부족하고 우수한 경영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다. 산업 기반이라 할 부품 소재 분야의 중소기업도 매우 취약한 게 현실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한국의 산업구조를 볼 때 대만처럼 일본의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콜레스테롤이 쌓인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을 한국이나 대만이 인수해 일본을 자극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거다. 일본은 20년간 경제가 엉망이었지만 인프라와 기초기술이 있어 망하지는 않는다. 캐논 도요타자동차 등 여전히 강한 기업도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국 젊은이의 지나친 미국 지향이다. 대만과 중국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인맥과 지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화된 한국인은 큰 경쟁력이 없다. 비슷한 능력의 미국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 지식에 더해 중국 일본을 잘 알아야 미국 경영학석사(MBA)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낙관하나.

“양국 지도자가 서로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바보 같은 행동을 피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마에 겐이치 총장은 ::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맡아 글로벌 기업은 물론 지역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오래 활동해 왔다. ‘국경 없는 경제학과 지역국가론’의 제창자로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경제 세계화에 따른 기업의 국제화 문제, 도시 발전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 국가 개념과 관련한 글과 논문을 꾸준히 싣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스승)로 선정했다.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등 100권 이상을 저술한 그는 현재 인터넷으로 경영학석사(MBA) 교육을 하는 학교를 설립해 인재 발굴과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원자력공학 박사 출신이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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