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이진영]추신수의 몸값

꿈 꾸는 소년 2014. 1. 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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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1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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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추신수의 몸값

이진영 문화부 차장

금의환향한 추신수 선수의 성공담에서 눈길이 가는 건 그의 마이너리그 시절이다. 당시 월급은 1000∼2000달러였고 700달러짜리 월세집에서 다른 선수 부부와 화장실을 함께 쓰며 살았다고 한다. 동갑내기 부인은 산후조리는커녕 혼자 차를 몰고 병원을 오가며 아이를 낳았다. 한창 나이의 야구선수는 레스토랑에서 공짜로 나오는 빵 조각을 챙겨와 먹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지 5년 만인 지난해 말 그는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 원)를 받고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마이너 시절보다 최대 1500배가 넘는 연봉이니 잭팟이 터졌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메이저리거의 몸값에 대해선 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공정한 룰에 따라 얻은 자랑스러운 부(富)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승자독식이라는 살벌한 이데올로기를 극소수의 성공담으로 미화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조던의 돈’에 관한 가상 논쟁을 소개했다. 농구 황제의 수입에 세금을 왕창 물리자는 쪽은 말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 돈이 더 절실하다고. 반대쪽에선 이렇게 반박한다. 부자의 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는 건, 그게 로빈 후드든 국가든 결국 도둑질이라고. 논쟁은 이어진다. 조던 혼자서 경기를 치를 순 없다. 맞는 말이지만, 동료 선수와 경기장 관리 노동자 등은 이미 자신의 용역에 대한 대가를 받았고 이는 스스로 동의한 것이다. 농구로 돈 잘 버는 시대에 태어난 건 조던의 공이 아니다. 하지만 조던의 재능이 조던 것이 아니면 누구 것이란 말인가….

어느 쪽이 맞든 상관없이 승자독식은 스포츠 밖의 분야에서도 확고한 룰로 자리 잡았다. 외환위기 이후 80 대 20으로 재편된 한국 사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엔 99 대 1로 더욱 갈라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4대 그룹이 30대 그룹 총 순이익의 80%를 차지한다. 중산층 비율은 1990년 74.5%에서 2010년 67.3%로 줄었다. 문화계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최고 흥행 배우가 된 송강호는 제작비 72억 원인 영화 ‘관상’ 출연료로 20억 원 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화 스태프의 평균 월급은 60만 원도 안 된다.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돼 가도록 결과에 승복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도, 52 대 48로 이기고도 패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승자독식의 룰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말 본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은 ‘2013 올해의 책’으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불평등의 대가: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를 꼽았다. 저자는 각주만 145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불평등은 정의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지 않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1년 보고서에서 “경제성장의 장기적인 지속은 소득 재분배의 평등성 확대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고, 보수 성향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12년 10월 “불평등이 효율성을 저해하고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갑오년 새해는 99 대 1의 아찔한 불균형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그래서 ‘상위 1%의 섹스’ 같은 황당한 포르노 제목이 나오지 않았으면, 땀 흘린 스타들의 대박 스토리에 배 아파 하지 않고 푸근한 박수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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