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

그 언덕 위의 복음 / 다니엘 김 선교사(예수세대운동) - 2013.11.11.월

꿈 꾸는 소년 2014. 3. 14. 22:13

 마 26:36~46

 

 "너는 복음을 위해 어디까지 가겠느냐?"는 질문에 땅끝까지 죽음까지 가겠다는 것이 우리의 답이겠지만 변화산의 영광을 보고도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만큼 사람은 軟弱한 존재입니다. 겟세마네의 사건은 주님께서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까지 돌파하셨는지 세 가지 原動力을 보여줍니다.

 

 첫째, 회복을 위한 熱情(36)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가장 구원, 나라의 회복을 熱望하십니까? 기도는 하지만 우리 아음 속 깊이 "설마 되겠어?"라는, 현실에 굴복한 불신앙이 가득차 있습니다. 회복을 꿈꿨기에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우리 주님은 "정말 회복을 꿈꾼다면 너는 일어설 수 있어, 다시 한번 회복을 향한 열정을 네 안에 회복하라"고 도전하십니다.

 

 둘째, 굴복을 통한 기도(37~42)입니다.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첫번째 기도에서 이미 하나님께 굴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뜻을 바꾸지 않으실 것을 아셨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와 자신을 치는 복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깨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것은 깨어날 이유를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 '애써'(agony)의 원어적 의미는 '통증을 가하다' 입니다. 33세 청년이 풍랑 속에서도 깨지 못하고 깊이 잠들만큼 늘 피곤했던 예수님이 '애써' 기도한 것은 안 졸려서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 현실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고통을 가해 깨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향한 마음(46)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자고 하실 때 현실은 그대로 였지만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평안하셨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사람의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위로만 바라며 견디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위로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진짜 용기있는 자는 무서워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내가 일어서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현실 속에서 하나님 바라보고 일어나는 자입니다.

 

 겟세마네 사건은 "나도 무서웠어. 하지만 나는 너희 회복과 하나님 나라가 임하실 것을 熱望하며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이 길을 돌파했어, 너도 그래줄 수 있겠니?"라는 주님의 도전입니다. 요약 최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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