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26>“낸 보험료 다 돌려준다”는 보험 상품의 허구

꿈 꾸는 소년 2014. 10. 20.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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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03:00: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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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낸 보험료 다 돌려준다”는 보험 상품의 허구

홍수용 기자

인명피해가 큰 사고가 터지면 보통 보험 기사가 따라 나온다. 보험금은 망연자실해 있는 당사자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충격을 받은 일반인에게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일말의 안도감을 준다. 보험의 순기능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평소 보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가? 이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보험사들이 한쪽 면만 부각해 소비자를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 광고를 보면 요즘 보험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점을 현혹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1. (두 직장인이 암에 걸린 김 부장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암 보험은 들었대?” “보험료 아끼느라 안 들었대.” “보험료야 나중에 돌려받으면 되는데.” “낸 보험료를 돌려받아?” “그럼 못 돌려받아?”

#2. (두 주부가 생활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달도 통장이 마이너스네. 애들 학원비에, 보험료까지 올라요.” “보험료가 올라?” “그럼 안 올라요?”

첫 장면은 만기 때 보험료를 돌려주는 만기환급형 보험을, 두 번째 장면은 보험료가 고정되는 비갱신형 보험을 광고한 것이다. 광고는 ‘이런 것도 몰랐나, 서둘러라’ 하는 식으로 가입을 부추기고 있다.

만기환급형 가입을 유도하는 광고1은 본전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성향에 착안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2가지 면에서 오해하기 쉽다. 먼저 재테크 측면에서 만기환급형이 순수보장형보다 낫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진실과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만 30세 남성이 A보험사 암보험에 가입할 때 내는 월 보험료는 만기환급형인 경우 9만 원,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없는 순수보장형인 경우는 6만 원이다. 만기환급형 보험료가 순수보장형보다 비싼 것은 나중에 보험료를 돌려주기 위해 쌓아두는 저축보험료 3만 원이 더 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기환급형에 드는 사람은 6만 원짜리 순수 암보험에다가 3만 원짜리 저축상품에 추가로 드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보험 전문가 2명의 말을 종합하면 보험료가 싼 순수보장형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 차액만큼은 다른 전문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게 낫다.

또 만기환급형이라고 모든 보험료를 전액 돌려주는 게 아니다. 보험료는 주 계약에 대해 내는 보험료와 특약에 대해 내는 보험료로 구성되는데 주 계약 보험료만 환급 대상이다. 보통 암 진단 같은 보험의 주된 계약을 위해 내는 보험료가 70∼80%, 다른 질병 보험금이나 입원비 같은 특약을 위해 내는 보험료가 20∼30% 정도 된다. 주 계약과 특약으로 구성된 월 보험료 10만 원짜리 보험을 만기환급형 조건으로 들면 7만∼8만 원만 돌려받는다.

두 번째 광고는 보험료가 정기적으로 오르는 조건(갱신형)보다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 조건(비갱신형)이 더 좋다는 취지의 광고인데 이 역시 일반화의 오류다. 보험료 납입 기간이 20년이라고 할 때 비갱신형 보험은 20년간 내는 총 보험료를 240개월(20년)로 나눠서 월 보험료를 정한다. 초기 보험료가 비싸지만 나중에 오르지 않는 게 장점이다. 반면에 갱신형 보험은 초기 보험료가 싸고 나중에 질병발생률, 사망률 등을 따져 보험료를 올린다. 납입 기간 후반부 보험료가 비갱신형보다 비싸지는 경향이 있다. 추후 질병발생률과 사망률에 따라 갱신형이 비갱신형보다 총 납입보험료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광고2에서 빠뜨린 게 또 있다. 보험사가 파는 갱신형과 비갱신형 가운데 똑같은 내용을 보장하는 상품은 거의 없다. 같은 보장에 대해 비갱신형 보험료가 갱신형보다 크게 비싸서 상품 구성을 똑같이 하면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가령 축구 선수를 위한 ‘무릎 보험’이 있다고 하자. 무릎 관절이나 인대 염증, 경직 같은 작은 부상부터 수술이 필요한 큰 부상까지 모든 부상을 보장하는 보험을 갱신형으로 들면 한 달 보험료가 10만 원이지만 비갱신형으로 하면 30만 원으로 오른다. 비갱신형이 너무 비싸 보험 판매가 힘들다고 본 보험사는 보장 대상에서 염증 같은 작은 부상을 제외한다. 이렇게 해서 월 보험료를 15만 원 정도로 내리면 소비자들은 ‘감당할 만한 보험료 수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실버보험’도 맹점이 있다. 보험 가입이 힘든 고령층에게 인기가 높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에 대해 계약을 받아준다는 건 가입자가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위험도를 따지는 이른바 ‘언더라이팅’ 과정을 생략한다는 의미다. 보험료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험금과 관련한 분쟁조정 과정을 보면 보통 보험사가 유리하다. 약관에 자세히 설명돼 있고 광고 말미에도 주의사항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선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런 식으로는 ‘보험사는 가입 때와 보험금 줄 때 말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 일종의 사회안전망인 보험 가입률이 급락하면 국가가 잠재적 위험에 대한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보험 약관이 해결의 열쇠다. 보험사들이 종이 아낀다고 약관도 e메일로 준다는데 종이 아낄 때가 아니다. 큰 글씨로 보기 좋게 출력한 약관에 중요한 대목마다 빨간 밑줄을 그어 소비자에게 보내야 한다. 또 소비자도 약관 읽는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오죽 약관을 읽지 않으면 금감원이 약관을 만화로 만드는 방법까지 생각할까. 김용우 금감원 보험상품감독국장은 보험 가입 때 약관 설명 듣는 ‘인내의 1시간’이 보험 가입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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