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광복 70주년, 亡國의 역사를 가슴에 담자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격전의 광성보 전투, 조선군은 맹렬히 싸웠다. 그러나 최신 무기로 무장한 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재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구식 화승총은 때로 짐이 됐다. 미군들이 성벽을 올라오자 이들은 총을 놓은 채 성벽 난간에 올라가 돌을 던지며 항전했다. 후방의 미군은 이들을 놓치지 않고 겨냥했다. 전투는 불과 1시간, 조선군은 포로로 잡힌 일부를 제외한 300여 명이 전몰했다. 미군 전사자는 단 3명이었다. 최신의 포와 총을 가진 적군에게 돌을 들고 맞서게 하는 나라, 그게 조선의 형편이었다.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율곡 선생이 선조에게 올린 장문의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가 생각났다. “썩어 무너지고 있는 집과 같습니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집니다.”
어쩌다 나라가 그리 됐을까? 선생이 다시 말했다. “때가 바뀌면 법과 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천하에 없는 법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맞추어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것을 제때 고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정약용 선생을 비롯하여 후대의 수없이 많은 지성들이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조 때 잠시 반짝했을 뿐 세력화되지 못했다. 그 결과 조선은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상공업이 발달해도, 중국 중심의 질서가 와해돼도 그저 그렇게 끝까지 갔다.
옆 나라 일본은 달랐다. 19세기 후반, 정치권력의 변방에 있던 하급 무사들이 조슈와 사쓰마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막부를 타도한 후 국가 운영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었다. 이른바 명치유신이다.
미국의 페리 제독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개한 나라’ 일본, 그러나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근대화 혁명을 통해 국력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결국 조선을 집어삼켰다.
광복 후 70년, 그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 모진 전쟁을 겪고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경제 대국이 됐다. 프리덤하우스의 자유도지수가 상위권에 속하는 1∼2점을 오르내리는 민주국가가 됐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고 불안하다. 성공의 그림자 또한 짙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 심화되는 양극화와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가는 가계부채…. 여기에 이 모든 문제를 감당해야 할 사회 시스템과 국가기구의 역량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지금 조선이 걸었던 망국의 역사와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을 하고 있는가?
글쎄다. 당장에 국가의 의사결정 능력부터 문제다. 개인이든 국가든 다루어야 할 문제를 제때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것이 곧 망조다. 산업구조 개편,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보라. 이 점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나?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은 더이상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줬다면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들의 잇단 실패와 고난 역시 지금 구조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횡적 종적 재배치와 대표 시스템과 참여 기제의 개편 등 보다 근본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런 문제에 있지 않다. 어느 쪽이 이기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가 있다. 지도자들 또한 마찬가지, 엔진이 고장이 난 차를 두고 자신이 몰면 새 차처럼 달릴 수 있다고 국민을 속인다. 그러면서 허구한 날 싸울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움질을 한다.
“정치하는 자들이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 문제다. 쇳덩이를 용광로에 녹여 새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저 있는 물건 두들겨 다듬는 대장장이 짓을 한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이익 선생의 말이다. 그래서 조선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일본의 하급 무사들이 그러했듯 많은 경우 근본적 개혁은 오히려 권력의 변방이나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광복 70주년, 세상의 이치가 그러니 다 같이 관심을 갖자는 말이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겨도 잘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민하자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는 망국의 길로 치닫는 자들의 힘을 막을 수가 없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미국의 페리 제독에게 무릎을 꿇었던 ‘미개한 나라’ 일본, 그러나 이후 급격히 달라졌다. 근대화 혁명을 통해 국력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결국 조선을 집어삼켰다.
광복 후 70년, 그 역사가 자랑스럽다. 그 모진 전쟁을 겪고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경제 대국이 됐다. 프리덤하우스의 자유도지수가 상위권에 속하는 1∼2점을 오르내리는 민주국가가 됐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고 불안하다. 성공의 그림자 또한 짙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 심화되는 양극화와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가는 가계부채…. 여기에 이 모든 문제를 감당해야 할 사회 시스템과 국가기구의 역량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지금 조선이 걸었던 망국의 역사와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을 하고 있는가?
글쎄다. 당장에 국가의 의사결정 능력부터 문제다. 개인이든 국가든 다루어야 할 문제를 제때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것이 곧 망조다. 산업구조 개편,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보라. 이 점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나?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은 더이상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줬다면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들의 잇단 실패와 고난 역시 지금 구조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횡적 종적 재배치와 대표 시스템과 참여 기제의 개편 등 보다 근본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런 문제에 있지 않다. 어느 쪽이 이기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가 있다. 지도자들 또한 마찬가지, 엔진이 고장이 난 차를 두고 자신이 몰면 새 차처럼 달릴 수 있다고 국민을 속인다. 그러면서 허구한 날 싸울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움질을 한다.
“정치하는 자들이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 문제다. 쇳덩이를 용광로에 녹여 새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저 있는 물건 두들겨 다듬는 대장장이 짓을 한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이익 선생의 말이다. 그래서 조선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일본의 하급 무사들이 그러했듯 많은 경우 근본적 개혁은 오히려 권력의 변방이나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광복 70주년, 세상의 이치가 그러니 다 같이 관심을 갖자는 말이다.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겨도 잘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고민하자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는 망국의 길로 치닫는 자들의 힘을 막을 수가 없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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