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 13:1~3>
인생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렘6:19절에서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의 나를 결정하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나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2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1. 열린 교회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인종의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깨뜨린 열린교회였습니다. 1절을 보면 안디옥교회에서 사역한 여러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들의 面面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드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나엔은 헤롯 분봉왕의 젖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다소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1절에 소개된 동역자들의 출신 성분을 보면 결코 함께 동역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흑인이고 어떤 사람은 이방인이고 어떤 사람은 귀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다인종, 다계급, 다문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교회는 反目이나 不和가 없었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되어 동역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출신배경과 계층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문화적 慣習까지도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안디옥교회는 열린 교회였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세상의 문화에 대하여도 열려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출신성분이 다르고 문화적 관습이 다른 그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동역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는 안디옥교회와 같이 열린 교회여야 합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고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함께 할 수 있는교회여야 합니다.
2. 예배에 목숨을 거는 교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2절a) 우리가 잘 하는 거처럼 유대인들은 금식의 절기를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금식과는 달리 주를 섬기기 위하여 금식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으로 금식을 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주를 섬기기 위하여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 "주를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은 이 부분을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 할 때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금식하며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왜 금식까지 하면서 예배를 드렸을까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成就하기 위해 금식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금식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더욱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예배를 드리기 우해 집중력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배가 얼마난 귀하고 소중하였으면 그들은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이것을 보면 그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예배드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바로 예배에 목숨을 거는 교회입니다.
3. 주님이 주인 되는 교회.
안디옥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라 세우라"(2절b)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구별하여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원했던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3절을 보면 금식하며 기도 한 후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派送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사실 예수를 믿는 지 2,3년년 밖에 안되는 교회였습니다. 어쩌면 많은 성도들은 예수를 믿은지 1년도 안되는 성도들도 1년도 안되는 성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보면 이제 갓난 아이들과 같은 그런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의 어머니와 같은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누구입니까? 안디옥교회의 목회자입니다. 그동안 자신들을 가르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했던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여 보낸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漠漠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나나와 사울 두 사람은 한꺼번에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명령은 너무나 苛酷한 명령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금식하며 기도한 후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안디옥교회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나바와 사울이 훌륭한 목회자이고 지도자라 할지라도 교회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이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안디옥교회는 정말 주님이 주인 되는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정말 안디옥교회는 시스템과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시는대로 움직이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엡1:22).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하였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주님은 분명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의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는 모두 주님의 교회입니다. 목사의 교회도 아닙니다. 당회의 교회도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교회의 주인도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바로 주님이 주인되는 그런 건강한 교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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