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 12:14~19>
□ 엘리사의 죽음
본문 14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靈感을 가지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사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의 강물을 쳐서 요단강을 건넌 사람이었고, 선지자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한 사람이었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었고, 물의 독을 제거하여 땅의 土壤까지 바꾸어 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으 죽음은 아무리 능력 많은 사람도, 기도로 하늘의 寶座를 움직였던 기도의 사람도,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는 사람도 언젠가는 병이 들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위로차 방문을 하였습니다. 오아스는 죽을 병에 걸려 누어 있는 엘리사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14절) 요아스사 정말 엘리사를 존경하였기 때문일까요? 엘리사 선지자으 죽음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11절을 보면 요아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 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금송아지 우상 崇拜에서 떠나라!는 엘리사 선지자의 가르침을 拒逆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엘리사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며 외치고 있을까요? 그것은 엘리사의 죽음 이후 밀처닥칠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偶像을 숭배하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던 악한 왕이었지만 엘리사가 죽고 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하스 왕 역시 엘리사 선지자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여러 번 구하여 주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상 3장을 보면 모압과의 전쟁 때 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성령의 감동하심을 힘입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물을 마시게 될 것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물이 에뎀 쪽에서부터 흘러나와 그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왕하 3:20) 이스라엘은 예언대로 쉽게 모압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왕하 6장을 보면 엘리사는 아람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능력의 영감으로 어느 지역에 아람의 군대가 공격해 올 것을 미리 알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주어 미리 대비하게 함으로 나라를 지켜주었습니다. 엘리사는 이렇게 여러 차례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여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아스는 엘리사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확실히 기도를 통하여 나라를 지켜낸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이려울 때 나라를 지켜낸 恩人이었습니다.
□ 엘리사의 按擦
엘리사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15절). 활과 화살은 전재에서 주로 사용하던 무기입니다. 따라서 사용하던 화살을 취하라는 말은 아람과 전쟁을 하기 위해 무장을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요아스가 활과 화살을 가져왔을 때 엘리사는 활을 잡고 있는 요아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16절). 왜 엘리사는 활을 잡은 요아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을까요?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요아스에게로 흘러가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엘리사의 영감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무를 수 있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머무를 수 있는 거룩함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사모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내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거룩함이 없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자로부터 안수를 받고 안찰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에 내게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내 자신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 세 번만 치고 그친 지라
활을 잡은 요아스의 손 위에 손을 얹은 엘리사는 동쪽 창을 열고 활을 쏠 것을 명하였습니다(17절). 여기서 동편은 적의 진영의 아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적의 진영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은 앞으로 라람과의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세상을 떠나면서 주적의 개념을 정확히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살은 바로 여호와를 위한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며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17절). 여호와를 위한 화살이라는 말은 이 전쟁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그 승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람과의 전쟁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며 궁극적으로는 여호와께 영광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엘리사는 요아시아에게 활과 살을 취하게 한 뒤 땅을 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세 번만 치고 그쳤습니다(18절). 그런데 엘리사는 요아스가 화살을 들고 땅을 세 번만 치고 그친 것을 보고 노하였습니다. 왜 대여섯 번을 칠 것이지 세 번만 쳤느냐며 노하였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 밖에 치지 못하였습니다(25절).
그러면 왜 오아스는 화살을 들고 세 번만 치고 그쳤을까요? 선지자의 말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을 날이 臨迫하니 老妄이 들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보통 이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가 살면 되지! 거짓말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착하게만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한 두번, 아니 세 번만 치고 그만 두는 것은 죄입니다.
지금 우리의 손에도 여호와 를 위한 화살, 구원의 화살이 드려져 있습니다. 이 화살을 들고 열심히 땅을 치십시오. 당신이 열심히 땅을 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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