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팔자 고치는 방법이 궁금하다고요?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인생을 팔자의 개념으로 논하는 바도 존중해야 할 전통적 생각이나, 정신분석가인 저는 인생을 작은 이야기들이 모인 큰 복합체로 봅니다. 요새 말로는 ‘빅데이터’입니다. 저는 들은 이야기를 해석해서 돌려주는 ‘빅데이터 분석가이자 이야기꾼’입니다. 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 가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겁니다.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탐색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기억에 기반을 둔 이야기이지만 기억은 늘 왜곡되어 표현되기에 어렵습니다. 그러니 분석용 긴 의자에 누운 환자의 이야기는 왜곡된 기억을 토대로 그가, 그녀가 써내는 책입니다.
초기의 환자는 이미 자신의 팔자가 상당 부분 정해져 있다고 믿지만 삶의 어려움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삶의 의미가 실종되었기에 분석가를 찾아옵니다. 분석이 진행되면 자신의 ‘정해진 팔자’에 부모나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도 한몫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저질렀다고 원망했던 오래된 기억도 내용이 달라짐을 경험합니다. 깨달음은 고통스럽지만 좋은 약입니다.
깨달음이 쉽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왜곡된 기억을 털어내고 삶의 주체가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해, 달, 날, 시간을 축으로 결정되는 ‘팔자’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팔자에 대한 의미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돕는 일이 정신분석입니다. 음악의 예를 들면, 같은 악보를 같은 연주자가 연주해도 늘 똑같지는 않습니다. 연륜과 마음가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연주가 변합니다.
어떻게 보면 삶은 무대 위에서 부르는 한 편의 노래이고 우리는 시간이 되면 내려오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는 이야기를 듣기를, 더 크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내 삶을 크게 노래할 나이가 되면 밝은 장조로 할 것인가, 아니면 우울한 단조로 할 것인가의 결정이 내 몫이 됩니다. 그런데 목소리를 뽐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려니 악보가 엉망이라고 불평하며 삶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눈앞에 펼쳐진 악보가 다른 사람이 내게 던져준 것이 아닌, 바로 내가 작곡한 것일지 모릅니다. 원본을 베껴 내면서 여기저기 빼먹는 실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불평의 목소리로 소중한 삶의 시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올바른 자세를 취한 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르기 편안하게 편곡을 해도 됩니다.
삶의 무대에 서서 공포증을 느끼시나요? 서기 전부터 ‘징크스’가 있어서 이것저것 가리시나요? 쉽지 않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그냥 몸에 힘 빼고 올라가서 부르시면 됩니다! 두려움, 불안, 우울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성대에 부담을 주어서 발성을 방해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목을 잡으며 대포 쏘는 소리를 질러 보았자 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집니다. 바람직한 삶은 어느 정도 버려야 얻습니다.
정신분석이 결실을 이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마음이 바람처럼 움직여서입니다. 밝게 살려고 찾아왔지만 지금까지의 어두움이 익숙해 변화가 두렵습니다. 저항합니다. 밝은 세상길의 안내자인 분석가에게 느끼게 되는 친밀감도 불편합니다. 감추려고 때로는 분석가를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방어합니다.
저항과 방어는 아름다운 노래를 가로막는 근육의 긴장과 같습니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잡을 것인가. 내 삶을 살 것인가, 과거에 매여서 갈 곳을 잃을 것인가. 제자리에서 빙빙 돕니다.
삶의 노래는 주관의 표현입니다. 객관적 진실은 찾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간직된 주관적 진실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의 관계는 분석이 진행되면서 기억이 변합니다. 숨겨진 기억이 찾아지고 왜곡이 수정, 보완되면서 관계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삶의 책임이 부모나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다고 믿으며 사는 한 행복은 멀리 있습니다. 남을 비난하는 투사(投射)의 방어기제는 마음의 짐을 잠시 덜어주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삶이 공회전(空回轉)하고 있다면 나도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해결 통로의 입구가 비로소 눈에 보입니다.
감나무를 종일 쳐다보아도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엉뚱한 데 떨어져서 먹을 수 없거나 까치가 포식하는 광경을 지켜볼 뿐입니다. 내 팔자는 내가 나서야 고칠 수 있습니다. 삶의 개정판을 써서 팔자를 바꾸려면 꾹꾹 참기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버릇을 들여야 좋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나 그 사람 입이 가벼우면 마음의 상처가 추가됩니다. 안전하려면 비밀 보장이 되는 전문가에게, 여건이 안 되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거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성장합니다.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어느 날 삶의 의미가 정리됩니다.
한 가지 방법은 이러합니다. 내가 내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 애씁니다. 자문자답(自問自答)이 정 쑥스러우면 일기 쓰기를 권합니다. 물론 “날씨 맑음. 그가 사줘서 맛있는 것을 먹었다. 행복했다…”는 식은 아닙니다. “오늘 내가 한 일을 돌이켜 본다. 그의 말에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혹시 그 말이 내 자존감을 건드려서일까? 그렇다고 해도 내 자존감이 쉽게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 자존감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같은 허약한 기반에 세워졌는가? 어쩌다 나는 그렇게 됐을까? 이건 내가 풀어야 할 내 삶의 큰 숙제…” 이런 식으로 때마다 쓴다면 자기 성찰이 습관으로 정착되고 삶의 무게가 덜어질 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내 마음속 블랙리스트 (0) | 2017.07.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