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10>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가 확연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는 행위를 근거로 하지만 기독교는 은혜를 근거로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행위로부터 시작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종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은혜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무려 291번 나옵니다. 본문 10절에도 은헤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하여 나옵니다.
♧ 은혜란?
그러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은혜를 '카리스'라고 합니다. 카리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삯은 자기가 일한 그 대가를 정당하게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4장에서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삵이 은혜로 여져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롬4:4)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일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인간의 행위와 열심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행위와는 서로 배타적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1:6절에서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선행과 행위가 신앙의 출발이 되고 근거가 되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합니다.
♧ 신앙의 기초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시작, 신앙의 기초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여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5:12절b)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지 못하고 우리 인간의 행위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함이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정도의 선행을 행하고 의롭게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행위가 필요합니다.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와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뗄라야 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은 은혜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은혜에 굳게 설 때 우리의 믿음도 성장하고 은혜 속에 강한 자가 될 수 있고 충성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내가 나 된 거서은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사도 부르심을 입고 복음의 증인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 도성을 향하여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행9:4)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 중에 사도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였던던 자신이 이젠제는 예수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아니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이것을 보면 바울에게는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만 은혜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은혜에 감격했으면 한 절에 "하나님의 은혜, 내게 주신 은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이런 놀라운 감격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에게 이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이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이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난 다음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수고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헛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을 때 가만히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왜 바울이 그처럼 많은 수고를 하였을까요?
왜 바울이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을까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은혜를 갚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해야 한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갚을 수 있는 것이라면 삵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더 많이 수고합니까?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합니다. 은혜를 는 자는 그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합니다.
♧ 은헤를 아는 자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하여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그것 역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역할 수 있었던 것 그 모든 것 역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었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고난과 핍박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그 많은 사역을 감당하였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정말 은혜를 아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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