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6>전남 담양 기순도 전통장

꿈 꾸는 소년 2011. 2. 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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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4(월) 03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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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6>전남 담양 기순도 전통장

기순도 고려전통식품 대표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고려전통식품의 장독대에서 된장을 선보이고 있다. 2002년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입소문이 나서 귀한 ‘한국의 명품 먹을거리’가 됐다.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스삭스삭’. 대나무 잎들이 정갈하게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냈다.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라고 이 풍광의 아름다움에 감복했던 조선시대 문인 송순의 가사작품 ‘면앙정가’도 떠올랐다. 굽이굽이 돌담에 드리운 담쟁이 넝쿨, 고택 마루 밑에 널린 고무신, 마당에 빨갛게 핀 상사화….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 속 고요를 찾게 되는 곳,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2007년 지정)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이다.

‘느림과 비움’이 있는 이 마을엔 ‘슬로 푸드’도 있다. 5년 이상 묵은 간장인 진장(陳醬)의 깊은 맛과 향은 워낙 강렬해 한 번만 접해도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인고한 슬로 푸드의 내공이다. ‘치타슬로(슬로시티) 국제연맹’은 창평을 슬로시티로 정하면서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온 이 전통 장류를 극찬했다. 2008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된 기순도 씨(61)가 만드는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전통장’이다.

○ 종갓집 며느리가 빚는 ‘슬로 푸드’

지난달 28일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기 씨의 집 장독대에선 구수한 장맛이 피어났다. 500여 개의 장독 중에는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는 씨간장독도 있었다. 매끈한 윤기가 흐르는 검은 간장 빛깔은 동백기름을 바른 조선시대 여인네의 검은 머리카락 같았다.

기 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장군으로 유명한 탐라 고(高)씨의 후손으로 360년을 이어온 문중의 10대 종부(宗婦)다. 1972년 명문 종갓집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에게서 장 담그는 것을 배운 뒤 매년 10여 차례 조상 상차림을 했다. 남편이 1992년 창업한 고려기업(고려전통식품의 전신)에서 죽염을 생산하자 장을 만들 때 죽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동짓달(음력 11월) 말날(12간지 중 오·午 날) 만들어 한 달 정도 발효시킨 메주를 죽염수와 함께 항아리에서 다시 숙성시켜 간장을 만든 것. 잘 발효된 메주 고형분에 메주가루를 혼합해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면 된장이 된다.

“천일염 대신 죽염을 사용하면 장이 덜 짜고 감칠맛이 더해요. 장은 모든 좋은 재료가 잘 어우러져야 하죠. 좋은 공기, 좋은 콩(100% 국산 콩), 좋은 소금(죽염), 좋은 물(150m 지하 암반수), 좋은 장독(숨 쉬는 전통옹기)….”

한국 장류에도 ‘테루아르(음식 맛에 영향을 미치는 토양과 기후)’가 중요했다. 100년 묵은 소나무와 담양의 명물 대나무를 장독대 주위에 둘러 심은 것도 장이 호흡하는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서다. ‘역시나’였다. 기 씨가 차려온 점심 밥상에 놓인 고추장은 봉곳이 꾹꾹 담은 밥 한 그릇을 금세 훔치게 하는 영락없는 ‘밥도둑’이었다.

○ 세계화 꿈꾸는 우리의 장맛

1999년 남편이 세상을 뜨고 공장에 화재 사고도 났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간장과 된장은 불타지 않았다. 기 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들, 딸과 힘을 모았다. 2001년 냄새나지 않는 분말 죽염 청국장을 만들어 담양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세상을 넉넉히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기 씨의 도전은 계속됐다. 맵지 않은 고추장을 찾는 일본인을 겨냥해 단맛이 나는 딸기 고추장을 만들었다. 바쁜 맞벌이 주부를 위해서는 우거지와 들깨 등을 섞은 된장을 만들었다. 물만 넣어 끓이기만 하면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되는 제품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장맛의 명맥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2005년부터는 대한주부클럽과 공동으로 메주 바자회를 열고, 2008년부터는 ‘가족 장독대 만들어주기’ 행사도 했다. 고부가 함께 창평 공장을 방문해 메주를 골라 된장 간장을 담그면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2002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과 손잡고 각종 장 선물세트를 개발해 고려전통식품의 총매출은 지난해 10억 원을 넘어섰다.

기 씨의 기능 전수자인 장남 고훈국 씨(37)는 최근 황토로 메주 발효실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전통 장을 만들어볼 수 있는 한옥 체험관도 짓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은 느릿하면서도 정감 있게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품 안에서 고향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담급니다. 많이도 안 담급니다. 그런데 점점 멀리서도 찾아오시네요. 발효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손맛’이 경쟁력 있나봐요.”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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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 명품 먹을거리]<6>전남 담양 기순도 전통장

기순도 고려전통식품 대표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고려전통식품의 장독대에서 된장을 선보이고 있다. 2002년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입소문이 나서 귀한 ‘한국의 명품 먹을거리’가 됐다.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스삭스삭’. 대나무 잎들이 정갈하게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냈다.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라고 이 풍광의 아름다움에 감복했던 조선시대 문인 송순의 가사작품 ‘면앙정가’도 떠올랐다. 굽이굽이 돌담에 드리운 담쟁이 넝쿨, 고택 마루 밑에 널린 고무신, 마당에 빨갛게 핀 상사화….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 속 고요를 찾게 되는 곳,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2007년 지정)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이다.

‘느림과 비움’이 있는 이 마을엔 ‘슬로 푸드’도 있다. 5년 이상 묵은 간장인 진장(陳醬)의 깊은 맛과 향은 워낙 강렬해 한 번만 접해도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인고한 슬로 푸드의 내공이다. ‘치타슬로(슬로시티) 국제연맹’은 창평을 슬로시티로 정하면서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온 이 전통 장류를 극찬했다. 2008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된 기순도 씨(61)가 만드는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전통장’이다.

○ 종갓집 며느리가 빚는 ‘슬로 푸드’

지난달 28일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기 씨의 집 장독대에선 구수한 장맛이 피어났다. 500여 개의 장독 중에는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는 씨간장독도 있었다. 매끈한 윤기가 흐르는 검은 간장 빛깔은 동백기름을 바른 조선시대 여인네의 검은 머리카락 같았다.

기 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장군으로 유명한 탐라 고(高)씨의 후손으로 360년을 이어온 문중의 10대 종부(宗婦)다. 1972년 명문 종갓집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에게서 장 담그는 것을 배운 뒤 매년 10여 차례 조상 상차림을 했다. 남편이 1992년 창업한 고려기업(고려전통식품의 전신)에서 죽염을 생산하자 장을 만들 때 죽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동짓달(음력 11월) 말날(12간지 중 오·午 날) 만들어 한 달 정도 발효시킨 메주를 죽염수와 함께 항아리에서 다시 숙성시켜 간장을 만든 것. 잘 발효된 메주 고형분에 메주가루를 혼합해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면 된장이 된다.

“천일염 대신 죽염을 사용하면 장이 덜 짜고 감칠맛이 더해요. 장은 모든 좋은 재료가 잘 어우러져야 하죠. 좋은 공기, 좋은 콩(100% 국산 콩), 좋은 소금(죽염), 좋은 물(150m 지하 암반수), 좋은 장독(숨 쉬는 전통옹기)….”

한국 장류에도 ‘테루아르(음식 맛에 영향을 미치는 토양과 기후)’가 중요했다. 100년 묵은 소나무와 담양의 명물 대나무를 장독대 주위에 둘러 심은 것도 장이 호흡하는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서다. ‘역시나’였다. 기 씨가 차려온 점심 밥상에 놓인 고추장은 봉곳이 꾹꾹 담은 밥 한 그릇을 금세 훔치게 하는 영락없는 ‘밥도둑’이었다.

○ 세계화 꿈꾸는 우리의 장맛

1999년 남편이 세상을 뜨고 공장에 화재 사고도 났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간장과 된장은 불타지 않았다. 기 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들, 딸과 힘을 모았다. 2001년 냄새나지 않는 분말 죽염 청국장을 만들어 담양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세상을 넉넉히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기 씨의 도전은 계속됐다. 맵지 않은 고추장을 찾는 일본인을 겨냥해 단맛이 나는 딸기 고추장을 만들었다. 바쁜 맞벌이 주부를 위해서는 우거지와 들깨 등을 섞은 된장을 만들었다. 물만 넣어 끓이기만 하면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되는 제품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장맛의 명맥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2005년부터는 대한주부클럽과 공동으로 메주 바자회를 열고, 2008년부터는 ‘가족 장독대 만들어주기’ 행사도 했다. 고부가 함께 창평 공장을 방문해 메주를 골라 된장 간장을 담그면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2002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과 손잡고 각종 장 선물세트를 개발해 고려전통식품의 총매출은 지난해 10억 원을 넘어섰다.

기 씨의 기능 전수자인 장남 고훈국 씨(37)는 최근 황토로 메주 발효실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전통 장을 만들어볼 수 있는 한옥 체험관도 짓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은 느릿하면서도 정감 있게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품 안에서 고향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담급니다. 많이도 안 담급니다. 그런데 점점 멀리서도 찾아오시네요. 발효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손맛’이 경쟁력 있나봐요.”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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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도 고려전통식품 대표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고려전통식품의 장독대에서 된장을 선보이고 있다. 2002년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입소문이 나서 귀한 ‘한국의 명품 먹을거리’가 됐다.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스삭스삭’. 대나무 잎들이 정갈하게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냈다.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라고 이 풍광의 아름다움에 감복했던 조선시대 문인 송순의 가사작품 ‘면앙정가’도 떠올랐다. 굽이굽이 돌담에 드리운 담쟁이 넝쿨, 고택 마루 밑에 널린 고무신, 마당에 빨갛게 핀 상사화…. 천천히 걷기만 해도 마음 속 고요를 찾게 되는 곳,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2007년 지정)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이다.

‘느림과 비움’이 있는 이 마을엔 ‘슬로 푸드’도 있다. 5년 이상 묵은 간장인 진장(陳醬)의 깊은 맛과 향은 워낙 강렬해 한 번만 접해도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인고한 슬로 푸드의 내공이다. ‘치타슬로(슬로시티) 국제연맹’은 창평을 슬로시티로 정하면서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온 이 전통 장류를 극찬했다. 2008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된 기순도 씨(61)가 만드는 ㈜고려전통식품의 ‘기순도 전통장’이다.

○ 종갓집 며느리가 빚는 ‘슬로 푸드’

지난달 28일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기 씨의 집 장독대에선 구수한 장맛이 피어났다. 500여 개의 장독 중에는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는 씨간장독도 있었다. 매끈한 윤기가 흐르는 검은 간장 빛깔은 동백기름을 바른 조선시대 여인네의 검은 머리카락 같았다.

기 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장군으로 유명한 탐라 고(高)씨의 후손으로 360년을 이어온 문중의 10대 종부(宗婦)다. 1972년 명문 종갓집으로 시집와 시어머니에게서 장 담그는 것을 배운 뒤 매년 10여 차례 조상 상차림을 했다. 남편이 1992년 창업한 고려기업(고려전통식품의 전신)에서 죽염을 생산하자 장을 만들 때 죽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동짓달(음력 11월) 말날(12간지 중 오·午 날) 만들어 한 달 정도 발효시킨 메주를 죽염수와 함께 항아리에서 다시 숙성시켜 간장을 만든 것. 잘 발효된 메주 고형분에 메주가루를 혼합해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면 된장이 된다.

“천일염 대신 죽염을 사용하면 장이 덜 짜고 감칠맛이 더해요. 장은 모든 좋은 재료가 잘 어우러져야 하죠. 좋은 공기, 좋은 콩(100% 국산 콩), 좋은 소금(죽염), 좋은 물(150m 지하 암반수), 좋은 장독(숨 쉬는 전통옹기)….”

한국 장류에도 ‘테루아르(음식 맛에 영향을 미치는 토양과 기후)’가 중요했다. 100년 묵은 소나무와 담양의 명물 대나무를 장독대 주위에 둘러 심은 것도 장이 호흡하는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서다. ‘역시나’였다. 기 씨가 차려온 점심 밥상에 놓인 고추장은 봉곳이 꾹꾹 담은 밥 한 그릇을 금세 훔치게 하는 영락없는 ‘밥도둑’이었다.

○ 세계화 꿈꾸는 우리의 장맛

1999년 남편이 세상을 뜨고 공장에 화재 사고도 났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간장과 된장은 불타지 않았다. 기 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들, 딸과 힘을 모았다. 2001년 냄새나지 않는 분말 죽염 청국장을 만들어 담양군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세상을 넉넉히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기 씨의 도전은 계속됐다. 맵지 않은 고추장을 찾는 일본인을 겨냥해 단맛이 나는 딸기 고추장을 만들었다. 바쁜 맞벌이 주부를 위해서는 우거지와 들깨 등을 섞은 된장을 만들었다. 물만 넣어 끓이기만 하면 즉석 우거지 된장국이 되는 제품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장맛의 명맥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2005년부터는 대한주부클럽과 공동으로 메주 바자회를 열고, 2008년부터는 ‘가족 장독대 만들어주기’ 행사도 했다. 고부가 함께 창평 공장을 방문해 메주를 골라 된장 간장을 담그면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2002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과 손잡고 각종 장 선물세트를 개발해 고려전통식품의 총매출은 지난해 10억 원을 넘어섰다.

기 씨의 기능 전수자인 장남 고훈국 씨(37)는 최근 황토로 메주 발효실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전통 장을 만들어볼 수 있는 한옥 체험관도 짓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은 느릿하면서도 정감 있게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품 안에서 고향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담급니다. 많이도 안 담급니다. 그런데 점점 멀리서도 찾아오시네요. 발효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손맛’이 경쟁력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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