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中國

꿈 꾸는 소년 2010. 7. 17. 01:18

▷ 아편전쟁 : 1840년 영국에 敗하면서 急速히 무너졌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중국의 敗北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동양문명이 서양문명에 무릎을 끓은 것이다. 중국내에서도 중국 전통은 낡고 價値 없는 것으로 無視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서양에 패한 것은 중국 문명이 그만큼 劣等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겼다.  중국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성공하면서 더 심해졌다. 공자묘 등 수많은 역사 유산을 봉건시대, 계급시대의 잔재로 몰아 파괴했던 1960년,70년대 문화혁명은 자기 부정의 절정이었다. 그렇게 중국의 문화와 문명은 160년 이상 긴 잠에 빠져 있었다.

 2002년 중국 공산당은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문화 건설'을 처음으로 꺼내들고 나왔다. 군사대국 경제대국 이후의 국가 목표를 문화대국으로 정한 것이다.

<홍찬식 칼럼 수석논설위원.2010.7.16.금>       

▷ 인구 : 13억6천만 명<전 세계 인구의 1/5>     

 개혁개방 : 1978년. 당시 국내총생산(GDP) 2165억 달러. 2010년-국내총생산(GDP) 5조5천억 달러. 32년 새 25배. 1인당 GDP도 224.3달러도 4천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기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1992년 수교 당시 한국의 1.4배였던 GDP는 2009년 한국의 6배로 늘었다. 최근의 중국의 國富는 2년 마다 한국의 전체 GDP만큼씩 늘어난다.

▷ 1인당 소득 : 2009년 3600달러

▷ 1인당 총생산 4200달러 미국의 10%에 못미친다. 그러나 인구가 미국의 4배에 이르기 때문에 1인당 총생산이 미국의 25%만 되더라도 국가 총생산은 미국과 같아진다. 현재  중국은 연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0%, 2009년 -2.6%, 2010년 2.8% 성장했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의 부상과 한국의 안보위기. 2001.9.1.목.동아.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 한중수교 : 1992.8.24.월.오전 9시(한국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北京) 국빈관 댜오위타이(釣漁臺) 17호루(樓) 팡페이위안(芳菲苑).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 간의 역사적인 한중 수교 서명식.3분 남짓에 불과했다. 2008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 

▷ 면적 : 한국 100배 가까운 땅. 인구 13억6천만 명.

▷ 노벨평화상 : 2010.10.8.발표. 중반체제인사 류사오보 옥중 수상.

▷ 한국전쟁 : 240여만 참전. 18만여 명 사망.

▷ 문명과 문명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최전성기는 송나라 시대(10~13세기)를 꼽는다.

▷ 당나라 시대(7~10세기) 수도 장안(현재 시안·西安)은 세계를 향해 문호가 개방된 국제도시.인구 100만 명으로 당시 세계에서 큰 도시였으며 외국인 거주자는 5만 명에 이르렀다.

▷ 청나라 시대(17~20세기 초) 수도 베이징은 세계의 학문과 지식이 모이는 곳이었다. 중국 고전부터 서양의 과학기술까지 모든 학문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琉璃廠(유리창) 거리는 무려 27만 칸에 이르는 수많은 책방으로 가득한 '문화의 거리'로 조선지식인들을 사슴설레게 했다. - 아편전쟁 이후 170년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강대국으로 복귀했다.

                                           <2010.10.22.금.동아.홍찬식 칼럼.문화대국 중국의 추억>

▷ 중국계 작가 장룽은 2005년에 낸 '마오쩌둥-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제1부 제1장 첫 문장에서 마오를 "평화 시에 7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고 規定했다.

▷ 수교국 171개 가운데 한국은 155번째. 4만 5천 여 한국계 기업.<2011.1.5.수.동아. 기자의 눈. 중국을 포기햇허도, 어려워해서도 안된다>

▷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 대도살 기념관. 1937년 대학살 약30만명 희생.

▷마오쩌동<인구 25억 명 정도>.몽골 칭기즈칸<13세기 때는 4억 명에 불과했다> 각각 대략 40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인구 대비로 보면 칭기즈칸의 살육이 훨씬 심했다.

▷ 히틀러 600만 명. 스탈린 4,500만 명. 모택동 6,300만 명 살해<2011.12.26.월.동아.전면광고. 금란교회 동사목사 김홍도 감독>

▷ 55개 소수 민족. 91.5%.

'국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  (0) 2010.08.16
美國  (0) 2010.08.12
한국  (0) 2010.07.17
日本  (0) 2010.07.12
네덜란드  (0) 201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