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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구자룡]베이징 특파원을 마치며<2011.7.18.월.동아>

꿈 꾸는 소년 2011. 7. 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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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18(월)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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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구자룡]베이징 특파원을 마치며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굴기(굴起·떨쳐 일어남)로 부르는 중국의 부상은 길게는 개혁 개방 이후 30여 년간 연평균 9.8%의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기자가 2008년 3월 말 부임해 올 7월 말까지 베이징(北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한 3년여 동안에 가장 극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도 21세기 10년 동안의 사건이나 현상 중 세계사적으로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9·11테러’나 ‘아프가니스탄전쟁’보다 ‘중국의 부상’을 꼽았다.

2008년의 쓰촨(四川) 대지진과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2009년 건국 60주년 기념식과 2010년의 상하이(上海) 엑스포, 신해혁명 100년이기도 한 올해의 공산당 창당 90주년. 이 기간에 내부적으로는 중화 민족주의를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점차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으며 2009년에는 ‘100년 자동차 왕국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 됐다. 고속철도는 일본이 1964년 도카이도 신칸센을 처음 개통한 때보다 44년 뒤인 2008년 시작했으나 2010년 총길이는 최장이 됐다.

2009년 상하이 항의 화물처리량은 세계 1위가 됐고 2010년 상하이와 선전(深(수,천)) 증시를 합친 기업공개(IPO) 액수는 미국을 앞지르고 1위가 됐다. 증시 시가총액도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2위가 됐다.

이제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옛말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G2 국가가 됐으며 차이메리카(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 시대가 왔다는 데 이견이 없다. ‘워싱턴 컨센서스’(미국식 자유 민주 시장경제 체제) 시대는 차츰 기울고 ‘베이징 컨센서스’(중국식 국가 주도 개발 및 제한적 자유 민주 체제)가 부상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서 ‘재대기조(財大氣粗·부자가 되면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위세를 부린다)’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인권운동가로 수감 중인 류샤오보(劉曉波) 박사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며 노벨위원회를 폄하했다. 주변국과 영토 영해 갈등이 발생하면 경제적 파워를 거침없이 무기로 삼았다.

‘글로벌 파워 중국’이 그에 걸맞은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중국이 경제대국과 강국을 넘어 존경받는 지도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 부심하고 노력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내년으로 한중 수교 20년을 맞는다. 거인이 된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가 과제다.

다행히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구석구석까지 한국을 알고 호감을 갖고 높이 평가하는 중국인이 많아 그야말로 한류의 실핏줄이 퍼져 있는 것에 놀랄 때가 많았다. 앞으로 양국 교류 강화에 큰 재산이다.

반면 대중화 의식이 높아지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도 감지된다. 한국에서도 중국이 최근 수년간에 이룬 성과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한한 긍정적 가능성을 주목하기보다 부정적인 단편적 사건이나 과거 어느 시점에 맞춰진 편견을 통해 중국을 보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한중은 ‘당일치기’ 출장을 다닐 만큼 가깝다. 한중 간의 작은 차이보다 훨씬 큰 공동의 지향점을 양국 간 자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남은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르려고 한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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