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착한기업 선포식’까지… 中서 혼나는 한국기업들

꿈 꾸는 소년 2011. 9. 22. 17:08

dongA.com

2011.9.22(목) 03:00 편집

프린트닫기

‘착한기업 선포식’까지… 中서 혼나는 한국기업들

영사관이 마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포럼’ 주칭다오한국총영사관이 21일 중국 칭다오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연 ‘제1회 한중 CSR포럼’. 한국과 중국 기업 대표들이 사회적 책임에 관한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칭다오=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21일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시에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그동안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주칭다오총영사관이 주최한 ‘제1회 한중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포럼’에서다.

기업이 아닌 영사관이 나서 이런 행사를 연 것은 한국 업체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포럼이 사실상 ‘착한기업 선포식’이라는 말도 나왔다. 왜 한국 기업이 이런 결의까지 해야 했을까.

○ 인가 말소된 기업 절반이 한국 기업

지난달 하순 칭다오 청양(城陽) 구의 A사 임원들은 등산복을 입고 회사를 빠져 나왔다. 이들이 간 곳은 산이 아닌 공항이었다. 등산복을 입고 나선 건 직원들과 구 정부, 공안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것. 이 회사의 중국인 근로자들은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실업자가 됐다.

작년 말 청양 구의 다른 한 중소기업 대표는 알고 지내던 조선족에게 뒷일을 부탁한 채 한국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중국에 있는 공장은 밀린 세금 등으로 사실상 껍데기나 마찬가지였다. 칭다오총영사관의 주요 민원 접수 사례 중 하나는 한국 업체 대표들이 “폭도들에게 감금당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면 임금을 몇 달째 안 줘 종업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거나 사장이 몰래 출국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왕톈런(王天仁) 산둥 성 공상국장은 “회사 설립 신고 후 2년 내에 자본금을 출자해야 하는데 영업 부진 등의 사유로 자본금을 법정 기한 내 출자하지 못해 허가가 말소된 한국 기업이 지난해에만 910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작년에 산둥 성에서 인가가 말소된 업체 중 절반이 한국 기업이다. 2007년 1만 개에 이르던 산둥 성 내 한국 기업들은 올해 6200여 개로 줄었다.

○ 야반도주 부추기는 중국 당국의 횡포

한국 기업인들이 이 같은 ‘비정상 철수’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와 시장 환경 악화의 영향도 크다. 공업용 스펀지 등을 생산하는 C사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지방정부에서 2045년까지인 토지임대 기간을 2015년까지로 줄일 수 있다는 법원 판결문을 들고 왔다”며 “알고 보니 우리 땅에 컨벤션센터 등을 짓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최근 외자 기업에 대한 토지 임대를 기존 50년에서 20년으로 가급적 줄이도록 지방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그는 “다른 도시에 투자하겠다고 했더니 ‘한국에서 새로 자금을 가져와 추가로 투자하라’는 조건을 내걸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청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은 외자기업이 철수하면 그동안 부여했던 세제 혜택을 회사 설립 시점까지 소급 적용해 모두 토해내도록 하고 있다. 토지사용권을 팔아 세금을 내려 해도 시세가 아닌 매입 당시의 금액을 기준으로 정부가 되사기 때문에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

한국 기업들의 비정상 철수는 현지에 남아 있는 기존 기업들에 대한 불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둥 성 해관(세관)은 최근 수출가공업체들이 원자재를 수입할 때 일괄적으로 보증금을 수입가격의 30%씩 예치하도록 했다. 수출을 했다는 증명을 제출하면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데, 최종 증명까지는 6개월가량 걸린다. 이 때문에 매달 100억 원어치씩 6개월간 600억 원어치의 원자재를 들여오면 180억 원이 묶이게 된다. 정상 영업도 정상 철수도 어려운 이유다.

○ 현지화 노력하지만 버티기 힘든 상황

그나마 형편이 나은 한국 기업은 꾸준히 현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나이키 신발을 위탁생산하는 ㈜창신은 이날 행사에서 소학교 건설, 장학 사업, 여성 직원을 위한 육아 프로그램 운영 등의 사례를 발표했다. 액세서리 제조업체인 황실공예품유한공사는 지역 노인 초청행사, 우수 직원 해외여행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대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도 재난지역 구호활동 현황 등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오찬에서 한 중소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내년에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중국의 한국 중소기업들은 손가락으로 툭 치면 쓰러지는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칭다오=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Copyright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