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대한민국은 ‘세속국가’인가
박제균 정치부장
“한국의 아줌마 할머니 여행객 가운데는 베드로 성당을 보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실소(失笑)한 일도 있다. 이렇게 불가사의한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종교야말로 진짜 영험하다는 이유에서란다.
초대형화된 개신교회는 세속화
더러는 이 무시무시한 성당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혈(膏血)을 바쳤겠느냐며 심각해지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1517년 교황 레오10세는 이 성당 건립비용을 대기 위해 면죄부까지 팔았다. 이에 마르틴 루터가 반발하면서 개신교가 탄생했다.
서구에서 거대 가톨릭의 횡포에 맞선 개신교 탄생 500년 뒤, 머나먼 동양의 대한민국에서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초대형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대형화된 교회는 자연히 세속화됐고, 공공연히 세습까지 이루어지는 곳도 있다. 그 엄청난 동원력과 전파력으로 세속권력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이슬람채권법을 유보시킨 것이 대표적 사건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 들어 유독 종교계와의 크고 작은 알력이 노출됐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천주교계와의 갈등에 이어 한나라당 불자 의원들이 19일 ‘참회의 108배’를 했지만 불교계와의 불화도 깔끔히 해소하진 못했다.
이 정권 들어 3대종교와 일제히 갈등 양상이 빚어진 가장 큰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부터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할 정도로 강한 종교적 색채를 드러냈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 출구에는 모자이크 성화(聖畵)가 있다. 성화 가운데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그 오른쪽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왼쪽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황제처럼 자신이 세운 대성당과 도시를 봉헌하는 거야 뭐랄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세우지도 않았고, 자기 것도 아닌 서울을 봉헌한다는 말에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은 불교계와 천주교계에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 초 인사부터 소망교회 인맥 논란이 불거지는 등 타 종교에서 섭섭할 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정권이 불교계와 천주교계를 다독이는 사이 개신교에서는 개신교대로 “장로 대통령이 해준 게 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정권과 3대종교의 불화의 강 밑엔 이런 저류가 흐른다.
종교와의 불화는 MB에 가장 큰 책임
문제는 이제부터다. 여권은 이슬람채권법 논의를 4·27 재·보선 이후로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재·보선 이후에도 개신교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지어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대통령 하야’ 운운에도 찍소리 못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만 ‘참으로 오만방자한 독선’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그런 이 대표도 사석에선 “지옥 갈 것 같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 찜찜해했다고 한다.
세속권력이 종교권력의 눈치나 보는 이 나라를 ‘정교(政敎) 분리’ 원칙이 지켜지는 ‘세속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한번 속(俗)을 향해 내디딘 종교권력의 발걸음은 성(聖)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우리를 불안케 한다. 그래서 주문(呪文)이라도 걸 듯, 이제는 사문화된 것 같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2항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국교(國敎)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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