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김정일은 행복했을까
권순택 논설위원
하지만 김정일은 개인적으로 평생 제왕도 부러워할 호사를 누렸다. 그는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출신 전속 요리사를 두고 전 세계에서 조달한 산해진미를 즐겼다. 그가 즐긴 곰발통찜이나 야자상어날개탕은 웬만한 미식가들도 맛보기 힘든 요리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 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죽었지만 그는 최고급 코냑과 와인 그리고 기쁨조에 취해서 행복했을 것이다. 그가 공식 동거한 여자만 4명이다. 첫 번째 동거녀이자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은 남편과 강제 이혼까지 당했다. 공식 동거녀 4명 외에 ‘숨겨진 여자’도 최소한 5명이나 된다.
김정일의 저택과 전국에 마련된 최고급 아지트인 초대소에는 전용 영화관이 설치돼 있다. 그의 일족은 특별히 북한말로 더빙한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영화를 즐겼다. 그들은 전용 승마장과 함께 수영 요트 제트스키 등 온갖 해양스포츠 시설이 갖춰진 동해안 원산초대소에서 왕족처럼 호화판으로 살았다. 13년 동안 김정일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초대소 시설이나 김정일 패밀리의 생활상은 풍요로운 나라 일본에서 온 나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가 지배한 나라는 주민들의 ‘쌀밥과 고깃국’도 해결하지 못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수준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해마다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국으로 꼽혔다. 오죽하면 그 많은 주민이 목숨 걸고 중국과 남한으로 탈출했을까. 그는 올해 민주화 바람에 권좌에서 쫓겨나거나 죽은 중동과 아프리카 독재자들과 비교해서 하나도 나을 게 없지만 죽어서 성대한 장례식까지 치른다. 그만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죽어서도 호사를 누리고 있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내 투명 유리관 속에 누워 인민들의 호곡을 듣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남한의 전직 대통령 부인과 정치인들은 직접 조문까지 가겠다고 한다. 생전에 그를 만난 인사들은 언론에 그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고 있다. 좌파들은 그가 저지른 만행들은 잊었는지 모른 체한다. 종북단체들은 최악의 독재자를 인터넷에서 추모하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조문단을 구성하겠단다.
비록 김정일은 70세도 못 채우고 죽었지만 평생 호사를 누렸으니 아쉬울 것도 없으리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가 좀 한산하고 주영 북한대사관에 그의 죽음을 축하하는 유인물이 나붙은 정도야 독재자에겐 대수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김정일이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사인(死因)이라는 심근경색은 당뇨 고혈압 등과 함께 스트레스가 가장 무서운 요인이다. 37년 동안 그가 상대한 남한 대통령은 8명이나 된다.
나는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소식을 영국에서 BBC 뉴스를 통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서늘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 그날 마이클 해즐타인 영국 상공장관이 TV에서 “역사는 김일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말은 부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김정일이 이승에선 행복했을지 몰라도 역사가 결코 그의 편이 아닌 건 분명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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