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커피 공화국
▷1511년 메카의 보수적 종교지도자들은 커피가 확산되자 커피 판매와 소비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카페인에 중독된 주민이 반발하자 오스만튀르크 술탄 셀림 1세는 커피 금지령을 폐지했다. 1532년 카이로에서도 커피숍이 탄압을 받았으나 소비는 줄지 않았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1605년 있었다. 일부 가톨릭교도들이 이슬람교도가 주로 마시던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며 교황청에 고발했다. 교황 클레멘토 8세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커피를 맛본 뒤 금지는커녕 커피에 세례까지 베풀었다. 음악가 바흐는 커피에 ‘칸타타’를 바쳤다.
▷한국인 중에서 커피를 가장 먼저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대피했던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권유로 커피에 입문했다. 작가 김탁환은 ‘매천야록’에서 고종독살 음모사건의 주모자인 김홍륙의 일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내려주던 여성 ‘따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노서아 가비’(러시아 커피)를 썼다. 고종황제가 조선역관의 딸로 러시아에 건너가 사기꾼이 된 따냐와 커피를 마시다가 살짝 입술이 부딪치는 장면이 나온다.
▷올해 커피 수입액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처음 3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1년 만에 5억 달러를 넘어섰으니 커피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설탕과 크림 찐득한 인스턴트커피 캔커피에서 드립커피 추출커피 캡슐커피에 이르기까지 커피문화도 눈부시게 진화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직장인 2065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마시는 커피는 3.4잔이고 88%가 커피를 마시지 못했을 때 금단현상을 보였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우리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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