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빨간색의 정치심리학
▷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대제는 자신의 궁전과 왕좌가 마련된 성당을 빨간색으로 칠했다. 황제의 권력이 교황보다 높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빨간색은 어떤 색깔보다도 두드러져 보인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입는 곤룡포(袞龍袍)와 익선관(翼善冠)도 빨간색이었다. 빨간색은 권력과 힘을 의미한다. 동양권에서는 빨간색을 부귀(富貴)를 불러오는 색깔로 믿는 경향이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즐겨 매는 빨간색 넥타이에도 이런 믿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28일 약속이나 한 듯 검은색 바지에 빨간색 재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나 후보는 지금까지 한나라당 상징색인 파란색을 즐겨 입었다. 서울시장 출마와 함께 스타일을 바꾼 듯하다. 워싱턴포스트에서 패션 에디터를 맡았던 로빈 기브핸은 “여성 정치인의 옷차림은 정치적 성명 발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두 후보의 빨간색 재킷은 권력 의지와 함께 “열심히 뛰겠다”는 다짐과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패션 전문가들은 다소 딱딱한 나 후보의 재킷보다는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박 후보의 재킷에 더 높은 점수를 매겼다.
▷ 빨간색에 긍정적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가 빨갛기 때문에 빨간색은 죽음과 불안, 금기를 연상시킨다.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를 상징해 ‘빨갱이’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빨간색 의상은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TV 여성 앵커들은 국경일이나 스포츠 이벤트에서의 우승 등 특별히 축하할 날이 아니면 빨간색 재킷을 입지 않는다. 빨간색이 시청자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패션과 이미지 경쟁도 좋지만 정책과 콘텐츠로 승부해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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