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년간 교사로 일하다 2007년 퇴직한 한용섭 씨(68·광주·사진). 일할 만큼 했으니 등산이나 여행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한 시간만큼 남은 인생도 길어 보였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막내딸의 비싼 학비도 짐이 됐다. 한 씨는 지난해부터 광주고용센터에서 취업지원상담원으로 매일 5시간씩 일한다. 막무가내 민원인도 ‘내 자식이려니’ 생각하며 이해하려 한다. 업무 평가가 좋아 재계약에 성공해 올해도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월수입은 50만∼60만 원 정도.
“생활이 어렵지는 않지만 돈 쓸 곳도 많고…. 일을 해야 천천히 늙잖아요.”
# 아들 둘, 딸 둘을 둔 곽연임 씨(85·서울 강남구).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30년 전 전남 강진에서 상경했다. 막내딸 가족과 지금껏 같이 살며 손자, 손녀를 키웠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매일 아침 동네 노인정에 가서 또래 할머니들과 어울리다가 오후 4시에 집에 온다.
노인정에서 점심식사 만들기를 돕고 용돈을 벌기도 한다. 소득이라곤 월 9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이 전부다. 집과 노인정을 걸어서 오갈 만큼 건강하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다.
“지금 삶이 어떠냐고? 만족스럽지. 큰돈이야 없지만 자식들이 잘해주니까….”
노인끼리도 세대 차이가 난다. 본보가 보건복지부의 ‘2008년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3개 집단(65∼74세, 75∼84세, 85세 이상)으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다. 노인실태조사는 3년마다 실시되며 2008년 조사가 가장 최근에 이뤄졌다.
이른바 ‘100세 시대’에는 인생주기가 한 바퀴 더 돈다. 제1인생을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로 나눈다면 제2인생 또한 청년노인(65∼74세) 중년노인(75∼84세) 노년노인(85세 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제2인생의 시동을 거는 청년노인이 가장 활동적이었다. 중년노인은 소득이 줄고 건강도 나빠지면서 고달파졌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년노인은 삶에 만족했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만 분류하는 방식은 100세 시대에는 유효하지 않다. 노년기가 세대별로 분화했음을 이해해야 초고령사회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노인의 36.5%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비율은 중년노인이 되면 19.4%로, 노년노인이 되면 7.6%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노인의 80∼90%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가 첫 번째였다. 박홍민 삼성생명퇴직연금연구소 상무는 “한국은 대학, 군대 등의 이유로 직장 생활은 늦게 시작하는 반면에 은퇴는 외국보다 빠르다. 자녀 독립도 늦어지고 있어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노인은 활발한 사회생활을 여전히 바라고 있었다. 단체활동 참여율이 80%를 넘었고, 11.6%는 자원봉사 경험이 있었다. 27.4%는 평생교육을 원했다.
청년노인의 월평균 소득은 50만 원 이하부터 100만∼200만 원까지 골고루 분포해 있었다. 중년노인이 되면 50만 원 미만이 37.6%, 노년노인이 되면 37.3%로 전반적으로 소득이 줄어들었다. 다만 소득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는 노년노인이 26.5%로 가장 높았다. 지출할 곳이 줄어들었거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말년의 긍정에너지’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청년노인이 28.2%로 가장 높았다. 다만 중년노인(16.4%)보다 노년노인(19.1%)이 더 높았던 것은 긍정에너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삶에 대한 만족도는 청년노인일수록 낮았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노인일수록 남은 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고 말했다.
긍정에너지를 가졌지만 노년노인은 정서적으로는 외로움을 호소했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사회활동이 줄어들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청년노인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자식 도움없이 당당하게 살아가겠다” ▼
75세 이상 ‘자립형 노인’ 18% → 47% 크게 늘어
10년 전과 비교해 노인들은 어떤 점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1998년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08년도 노인실태조사’를 통해 비교해봤다.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노인이 늘었다. 자식의 도움 없이 자신의 소득만으로 살아간다는 65∼74세 노인은 1998년 40.2%에서 2008년 53.3%로 늘었다. 75세 이상 노인의 경우는 18%에서 46.9%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일하는 노인의 비율은 별로 늘지 않았다. 1998년에 65∼74세 노인의 35.1%가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2008년에도 36.5%로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75세 이상 노인 중 일하는 비율은 16.3%에서 13.5%로 줄었다.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 필요해서라는 노인이 증가했다. 1998년엔 65∼74세의 일하는 노인 중 67.3%가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한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2008년엔 90.6%로 늘었다. 75세 이상의 경우에도 60.3%에서 78.4%로 늘었다.
오영희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옛날에는 노인들이 주로 시골에서 농·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70, 80대가 돼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며 시골에서 일하는 노인이 줄었기 때문에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부활동을 하는 노인은 크게 늘었다. 사교활동에 참여한다고 응답한 65∼74세 노인은 34.2%에서 60.1%로 증가했다. 75세 이상 노인의 경우 14.3%에서 39.9%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65∼74세 노인도 0.7%에서 3.2%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는 노인도 많아졌다. 1998년엔 65∼74세 노인 중 16.5%가 평생교육을 희망한다고 응답했지만 2008년엔 27.4%가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75세 이상에서 평생교육을 희망한다는 비율도 8.2%에서 11.4%로 늘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노인의 비율 역시 높아졌다. 노인들이 많이 건강해진 것이다. 혼자 가게에 다녀올 수 있다고 응답한 65∼74세 노인은 76.3%에서 92.9%로 증가했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65∼74세 노인도 69.3%에서 91.2%로 늘었다. 65∼74세 노인 10명 중 9명은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 전국 1만2567가구 대상 조사
보건복지부의 2008년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했다. 계명대 산학협력단이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 1만2567가구의 노인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다. 이 자료에서 따로 만 65세 이상 노인이 있는 1만517가구를 추렸다. 65∼74세, 75∼84세, 85세 이상의 세 집단으로 분류한 뒤 △경제적 상태 및 일자리 △건강과 여가 △가족 및 사회관계의 특성을 분석했다.
10년 동안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998년 ‘노인실태조사’ 자료도 활용했다. 이는 157개 표본지역을 추출해 9355가구, 65세 이상 노인 25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다만 이 자료는 75세 이상을 세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85세 이상 집단은 따로 비교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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