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왜 나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2012.6.3 / 제24권 23호>

꿈 꾸는 소년 2012. 6. 5. 15:37

☞ <고전 9:16~18>

 

 □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

 

 본문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네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거룩한 의무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不得不 할 일임이라(16절a)" 사도 바울은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부득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부득불 할 일"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소극적인 의미로 들려오지만 NIV 영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I am compelled" 어떤 감동이 와서 그것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룩한 부담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을 전도를 피해갈 수 없는 거룩한 의무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내가 받은 구원은 결코 나 한 사람에게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구원하신 것은 나를 통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구원하신 것은 바로 나를 통해 내 가족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옵션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 거룩한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영혼을 만나면 거룩한 부담을 느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만나면 거룩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을 만나면 빚진 자의 심정을 가졌습니다(롬1:14절).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모르고 살아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는 당신들에게 빚진 사람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모 얻든지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부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부담감, 거룩한 의무 때문입니다.

 

 둘째로,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16절b)"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안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화가 있을 것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구원이 절대 진리인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저주임과 동시에 슬픔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전도를 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으로부터 끔찍한 재앙과 벌이 임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할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신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侮辱이며, 슬픔이며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미면 곧 이어 생각해 보겠지만 복음 전파를 통해서 자신이 누리는 감격과 기쁨과 보람을 노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이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지 않아 그들이 망한다면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으로 찾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았기에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깨끗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6~27)" 오늘 당신도 바울처럼 당당하게 이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도 그들이 믿지 않는다면 그들이 지옥의 혈벌을 받게 되겠지만 마땅히 전도해야 할 내 부모, 내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지옥의 불 못에 떨어진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피 값을 내게 찾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바울의 마음 속에는 구원받지 못한 형제들로 인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롬9:23).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있었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인간관계의 아픔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인한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까?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로,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사을 얻으려니와(17절a)" 바울은 자발적 의지에 따라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은 상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상이 주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전도를 단순한 의무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 바울은 자원하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했을까요? 그 이유는 복음 증거는 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18절). 그런데 그 상은 미래에 천국에서 받아 누릴 상이 있고, 이 땅에서 지금 받아 누리는 상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했습니다(단12:3). 사도 바울도 상을 얻기 위하여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딤후4:7~8). 그리고 우리에게 상을 받도록 달음질 하라고 했습니다(고전9:24). 뿐만 아니라 전도자는 현장에서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눅10:17). 한 영혼이 돌아올 때 형용할 수 없는 感動과 感激을 누리게 됩니다.

 

 넷째로, 사명 때문입니다.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17절a)" 사도 바울은 지금 자의로, 기뻐서,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운 마음이 동반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도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댜(행20:24).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명은 보냄을 받은 것과 密接한 관련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인 사명(mission)은 라틴어 '보내다(sending)'에서 由來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절b)"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투자하고 노력하고 성취하여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은 사명입니다. 사명은 하나님이 나를 믿어 주셔서, 하나님이 나를 신임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요 가족이 된 나에게 전도할 수 있는 거룩한 직분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전도의 사명은 하나님이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은 사명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찬송가508장에 보면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欽慕하겠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의무요,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하는 것이요, 특권이요, 사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