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신앙생활의 核心은 누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宏壯히 고리타분하고 재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합니다. 勿論 신앙생활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누리는 것입니다. 죄악의 멍에를 벗어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리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시고, 구원과 소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무거운 짐을 지고 좁은 길을 걷는 삶도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메임이 아닙니다. 자유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누림입니다.
□ 누림이 먼저입니다.
신앙생활은 행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누림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남의 자녀된 자에게 주시는 특권과 축복을 누리십시오. 예배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기도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십시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텐데…'라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누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누림으로부터 행해져야 합니다.누림이 없이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림이 먼저입니다. 이 말은 봉사와 사역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와 사역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누림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일도 재미가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좁은 길입니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길이기에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열매가 있기에 찬송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죽지 못해 그 일을 勘當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누림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누림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은 以信稱義[以信得義],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1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는 화평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누린다는 것은 곧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화평을 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현장에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배롭고 存貴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면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存在.
화평을 누리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화평을 누릴 수 없는 존재였음을 前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화평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까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원수된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10절a). 그리고 본질상 진노이 자녀였기 때문입니다(엡2:3).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원수를 맺어 놓으면 불안하고 괴로운데 조물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가 원수된 관계였으니 거기에 무슨 평안이 있고 안식이 있겠습니까? 날마다 죄 가운데 거하며 죄책감 가운데 살아가는데 어찌 그 마음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는 영혼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지옥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어찌 그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 누가 화평을 누릴 수 있는가?
그러면 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까?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가 되었는데 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1절). 의롭다함을 얻은 자입니다. 오직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만이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롭다함을 얻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과의 적대적 관계, 원수된 관계가 청산되었기에 하나님께서 한 번도 죄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看做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판사가 "당신은 무죄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법적인 용어입니다. 내가 분명 죄인이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예수님께서 내 죄 값을 지불 하셨기에 이제는 한 번도 죄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간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1절).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9절a). 그러면 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왜 의롭다함을 얻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는 羞恥와 嘲弄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10절).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평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罪責과 자신 안에 있는 불완전성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이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롭다함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의 연약함과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평화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1절b).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하나님으로 더불어서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이 평화는 내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그리고 행위에 따라 주어지는 주관적 평화가 아닙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내 느낌과 감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객관적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도 누릴 수 있고, 인생이 풍랑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으며, 관계의 아픔 속에서도 누리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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