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患難(근심과 재난) 중에도 즐거워하라<2012.7.1/ 제24권 27호>

꿈 꾸는 소년 2012. 7. 1. 17:11

☞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신앙생활은 누림입니다. 롬5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살아야 할 축복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습니다. 그래서 언제들지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저와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祝福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살아야 할 축복이 무엇입니까?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3절a)"

 여기서 환난이란 헬라어로 '들깁시스'라는 단어인데, '위에서 무거운 짐이 억누르다', '맷돌이 짓눌러 괴롭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난은 무거운 돌덩어리가 마음을 짓누르는 것처럼 괴롭고 견디기 힘든 苦痛을 말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는 말은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 자들에도 환난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한 번도 죄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看做된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환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고난과 逼迫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가족 중 한 사람이 질병으로 쓰러질 수 있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잘 나가던 사람이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관계의 아픔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핍박을 받고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15:20)" 사도 바울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환란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不拘하고 환난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였던 다윗에게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에게도 환난이 있었습니다. 偉大한 지도자인 모세에게도 환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도 사자굴 속에 던짐을 받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해 평생 헌신한 사도 바울에게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동행하였던 제자들도 갈릴리 바다에서 風浪을 만났습니다.

 

 □ 즐거워하라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 환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환난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환난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면 불평합니다. 아니, 어떤 분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왜 何必 나에게 그런 고통과 아픔이 주어졌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정말 모든 사람은 환난을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다"는 말은 보통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기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벅차고 感激스러운 즐거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다"는 말을 또 다른 성경에서는 '자랑하다'라고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 정체성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느니라"를 2절, 3절, 11절에서 反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즐거워함이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 정체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왜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가?

 

 왜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 믿으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까? 환난 그 자체 때문입니까?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鍊緞을, 연단은 所望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3절b~4절)" 마침내 환난이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머리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서, 체험을 통해서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환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 환난의 有益

 

 그러면 환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인내는 결코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환난을 겪으면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우리에게 연단을 가져다줍니다. 연단이란 우리의 믿음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제거되어 우리의 믿음이 穩全해지고 堅固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욥기 23: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도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하는 동안에 연단을 받아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제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5분도 기도하지 못하던 사람이 23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게 됩니다. 돈과 출세와 성공밖에 보이지 않던 사람에게 이제는 하늘의 영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환난이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이룬다'는 것은 완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환난이 인내와 연단의 디딤돌을 거쳐 마침내 소망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의 마침은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 환난은 환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게 됩니다.

 환난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은 말이 그렇지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의롭다함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왜 환난 중에 즐거워합니까? 환난이 우리에게 인내를 만들고 우리를 연단하여 마침내 소망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환난은 마침내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임할 때 환난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환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환난 중에 즐거워하십시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바로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