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라<2012.6.24/ 제24권 26호>

꿈 꾸는 소년 2012. 6. 24. 18:58

☞ <롬 5: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鍊鍛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믿음으로 은혜 안에 들어감을 얻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야 할 축복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2절a)" 의롭다함을 얻기 전까지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은혜 밖에 있었습니다. 아니 그냥 은혜 밖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쫓겨났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을 때에 그들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생명나무가 있는 곳,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지 못하도록 그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도 영적으로 은혜 밖에 있을 수 박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은혜에 들어간다'는 말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성전과 성막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하는 것처럼 이방인들은 성막과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남자와 여자들 역시 성소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성소의 뜰만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소 안에는 누구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제사장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만이 매일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곳에 놓여 있는 陳設餠과 기름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 놓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들도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무 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단 한번 대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聖所의 揮帳이 찢어졌습니다. 언제 그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입니다(마27:51).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시고 "다 이루었다"며 殞命하시던 그 순간에 至聖所를 가로 막고 있던 그 굵은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 위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좌 앞에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히4:16). 이제 당당히 은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당신은 결코 은혜 밖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은혜 안에 있는 자입니다. 성전 밖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자입니다. 이제 더 은혜 밖에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이제 당당하게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 주님이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오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두신 그 길을 따라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소십시오. 우리는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찬양을 드릴 수 있고, 언제든지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나의 연약함을 고백할 수도 있고, 주님의 손길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라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들이 또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야 할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의롭다함을 얻은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백성이었지만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니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며 살았습니다(출33:11). 다윗 역시 구약의 백성이었지만 언제나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오며 搖動치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행2:25). 왜 우리가 흔들립니까? 세상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생의 풍랑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깊이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까? 예배드릴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보좌 앞에서 예배드릴 때 당신의 영광을 가장 찬란하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비전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장소이며, 예배의 시간은 이 땅에서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예배가 이 세상의 사업보다, 그리고 출세와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요11장을 보면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그리고 하늘은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여 항상 내 말을 들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로라"고 부르시니 죽어 냄새나던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가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절b)" 여기 "즐거워하다"라는 단어는 '뽐내다', '자랑하다', '기뻐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가 하나님을 자랑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당당하게 살지 못합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왜 마지못해 주님 걸어가신 길을 따라 갑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는 즐거워합니다. 당당합니다. 찬양하며 전진하며 나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