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루브르, 뉴욕 메트로폴리탄, 로마 바티칸, 피렌체 우피치, 런던 대영박물관 등 세계 각국의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사람에 치이고 시간 제약으로 쫓기다시피 각 층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로제타스톤, 후기 인상파 대표작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비너스의 탄생 등 각 미술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경우 너무 사람이 몰려 제대로 감상하기가 힘들다. 이런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착한 미술관’이 있다. 일본의 3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오쓰카제약그룹이 창립 7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도쿠시마 현 나루토 공원 안에 설립한 세계 최초, 유일의 도판 명화(陶板 名畵) 미술관 ‘오쓰카국제미술관’이다. 관람객들은 사진을 찍거나 작품에 잠시 손을 대보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도판 명화를 감상할 수 있다. 로봇 가이드가 하루 3번씩 안내 해설도 한다. 》
일본 최대의 상설 전시 공간(총면적 2만9412m²)인 이곳은 지하 5층, 지상 3층으로 세계 25개국 190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 명화 중 1000여 점을 특수기술로 도판(점토를 구워낸 도기 재질의 판)에 인화해 전시하고 있다. 6명의 선정위원이 작품을 엄선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전시 작품의 크기와 색상이 원작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소장 미술관이나 작가의 후손들과 철저하게 저작권 보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명화 짝퉁 미술관’이 아니냐는 선입견을 갖고 지하 3층 출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전시실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원화와 똑같은 모습으로 전시실의 천장과 벽에 그대로 재현돼 있는 것이다. 지난해 어둠 속에서 본 실제 두 그림에 비해 오히려 색상이 더 선명해 보였다. 원화는 관람객들의 호흡이나 환경오염 화재 등으로 퇴색 및 훼손을 피할 수 없지만 도판 명화는 2000년 이상 색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미술관 관계자는 설명한다. 이 미술관은 명화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약 3만 개의 색상을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이어 전쟁으로 인해 흩어졌던 엘 그레코의 제단화를 복원한 방과 조토 디 본도네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로 이동했다. 두 작품 모두 성수기에 현지에서는 예약 없이는 보기 힘든 작품이다.
고대와 중세 전시실에는 30일 일본에 오는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장면을 담은 모자이크화, 폼페이에서 발굴된 매혹적인 붉은 색상의 ‘미스터리의 집들’이 전시돼 있다. 정작 폼페이에 가서는 일정에 쫓겨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다.
지하 2층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명화 2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의 복구 전후 모습, 라파엘로의 ‘아테나 학당’,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이 눈길을 끈다. 또 렘브란트의 ‘야경’,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승천’도 볼 수 있다. 카페 밖 실외 연못 정원에는 모네의 ‘대(大)수련’ 연작이 타원형의 벽에 전시돼 있다. 지하 1층은 바로크 시대와 근대 명화들로 고야, 밀레, 르누아르, 고흐, 세잔, 뭉크, 클림트의 대표작 340여 점과 만날 수 있다.
지상 1층과 2층은 피카소, 샤갈 등 현대 작가들의 대표작과 테마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1층에는 외부전시 절대 불가인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게르니카’가 원작과 똑같은 크기와 색상으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이 작품을 도판으로 만들 때는 아들인 클로드 피카소가 직접 찾아와 작업을 감수했다.
미술관 설립자인 오쓰카 마사히토는 “학생 때 여기에 전시된 인류의 명작들을 감상하고 대학에 들어가 배낭여행을 하거나 결혼을 해 신혼여행을 할 때 원작을 보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최근 오쓰카국제미술관을 둘러본 교육전문기업 비상교육의 양태회 대표는 “교육적으로 대단한 효과와 의미가 있는 미술관이다. 큰 감동을 받았다. 실물과 똑같은 크기와 색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록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초등생 아들과 함께 온 미술애호가 이향미 씨는 “원작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한국 학생들도 이런 식으로 세계의 명화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쿠시마=글·사진 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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