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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명작 속의 명인을 찾아서]<下>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또다른 예술가들

꿈 꾸는 소년 2012. 10. 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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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8(수)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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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명작 속의 명인을 찾아서]<下>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또다른 예술가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간판 소장품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0등신 몸매를 자랑하는 비너스의 모델이 된 여성은 당시 ‘피렌체의 연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시모네타’라고 전해진다.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화가’란 평가를 받는 카라바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메두사’. 화가 자신이 모델이다. 생에 대한 자조와 회한, 시대에 대한 조롱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나무방패에 붙인 캔버스에 유채.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 ‘위대한 천재’들이 출현한 르네상스 시대와 이후의 바로크 시대에는 ‘압도적 천재’들의 그늘에 가린 ‘보통 천재’들이 다수 출현했다. 그들의 유일한 잘못은 르네상스 시대 ‘압도적 천재’와 같은 시대 또는 그 뒤에 태어났다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서양미술사는 그들의 역량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르네상스시대는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이나 조각을 이교의 우상으로 간주하던 폐쇄적인 중세 기독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마디로 이 시대엔 ‘조형예술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교황과 군주, 귀족들은 앞 다퉈 유행처럼 자신의 집과 별장 정원에 조각공원을 만들었다. 이 시대의 조각가는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했다. 이번 르네상스 기행을 통해 종전의 인식을 바꾸게 된 것은 화가 위에 조각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한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모욕감을 느꼈다는 일화에서 보듯 당시 조각은 회화를 압도했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규명하는 조형예술은 조각에 의해 완성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선두에 잔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가 있다.》


○ 교황들의 총애 받은 조각가 베르니니

베르니니는 역대 교황의 총애를 받아 조각 건축 분수제작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조각품은 탁월한 기교와 관능미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왔다. ‘프로세르피나의 겁탈’ ‘다비드’ ‘아폴로와 다프네’ 등과 같은 불멸의 걸작품이 전해진다. ‘로마의 센트럴파크’로 불리는 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보르게세 갤러리에 이 세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 작품들은 보르게세 추기경의 개인 소유였으나 지금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보르게세 갤러리에는 카라바조, 라파엘로의 명작들이 전시돼 있고 로마에서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아무래도 미켈란젤로의 같은 이름 작품만 못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폴로와 다프네’를 관람하면서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한 맹인이 도슨트(미술관에서 작품해석을 해주는 전문가)의 안내로 조각 곳곳을 세밀하게 손으로 ‘만지면서 읽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일반인은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할 수조차 없는 베르니니의 작품을 맘껏 터치한 그는 감격스럽다 못해 황홀하다는 표정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놀라울 따름이다.

베르니니의 ‘프로세르피나의 겁탈’ 앞에서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성 주피터의 딸 프로세르피나가 명왕성 플루토의 습격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아름다운 처녀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플루토의 역동적인 몸짓과 이를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프로세르피나의 표정이 압권이다. 특히 플루토의 두 손이 프로세르피나의 허리와 허벅지를 꽉 붙들고 있는 부분의 디테일 묘사에는 ‘악’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대리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육신이다.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니니는 주로 로마에서 활동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트레비 분수 못지않게 사랑을 받고 있는 나보나 광장의 피우미 분수도 그의 작품이다. 갠지스 강, 나일 강, 도나우 강, 라플라타 강을 상징하는 4명의 거인이 역동적으로 조각돼 있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에도 전해져 당시 유럽의 절대권력자인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초대로 파리에서 그의 흉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건축가로서의 그의 빼어난 역량은 로마가톨릭 총본산인 성베드로 대성당 정면 좌우의 원주(圓柱)회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예술가’ 카라바조

보르게세 갤러리에는 르네상스가 낳은 또 한 사람의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의 걸작 회화가 다수 전시돼 있다. 얼마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 속에 결혼식을 올린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이 미술사 수업을 같이 듣던 케이트 미들턴 씨에게 첫 ‘작업’을 걸 당시의 멘트가 “우리 카라바조에 관한 에세이 과제를 같이하지 않을래요”였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르네상스시대의 최고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동명이인으로 그의 본향인 밀라노 동쪽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 카라바조로 부른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그의 광기어리고 자유분방한 생활태도만큼이나 강렬하고 명암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39년의 생애에서 폭행, 기물파손, 살인 혐의 등으로 열다섯 번 수사기록에 이름을 올렸고 일곱 번이나 감옥에 갇혔으며 탈옥도 여러 번 한 ‘문제아’요 ‘반항아’였다. 보름쯤 작업을 한 뒤 한두 달은 칼을 차고 하인과 함께 테니스장 등에 나타나 싸움을 벌이곤 했던 다혈질이기도 했다. 서양미술사에서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예술가’로 기록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풍요와 쾌락의 상징인 바쿠스를 가난하고 병든 모습으로 그린 ‘병든 바쿠스’의 얼굴에 자신을 그려 넣었다. ‘과일바구니를 든 소년’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동성애적 요소가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그는 참수당한 인물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메두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살로메의 요청에 의해 목이 잘린 세례 요한 등을 그린 강렬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특히 그림 속의 목이 잘린 인물에 자기 얼굴을 그린 것은 삶에 대한 자조와 회한, 시대에 대한 조롱을 담아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작품을 대할 때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피렌체 르네상스’ 이끈 사람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몇 명의 예술가는 마사초와 브라만테, 보티첼리다.

마사초(1401∼1428)는 건축에서의 브루넬레스코나 조각에서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르네상스 양식을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세 명을 15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피렌체 르네상스의 트로이카’로 부른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등 프레스코 벽화는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면에 그린 ‘성 삼위일체’는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르네상스 작품. 하단의 해골 위에 적혀 있는 ‘지금 모습의 나는 원래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다. 당신도 나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는 문구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켈란젤로가 10대 소년 시절 마사초의 그림을 따라 그렸던 습작도 전해지고 있다.

브라만테(1444∼1514)는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중용(重用)되어 바티칸 궁전의 여러 건축과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과도한 공사비로 작업의 진척이 지지부진했고 조급함을 느낀 교황이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다가 종교개혁의 위기를 맞게 된다. 브라만테가 중도에 죽고 후계자들이 그의 설계를 토대로 공사를 했지만 대부분이 브라만테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직접 만든 바티칸 궁전 벨베데레(Belvedere·전망대)의 중정(中庭)은 이 시기의 가장 아름다운 구성으로 유명하다.

보티첼리(1445∼1510)는 르네상스 걸작 미술품이 가득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간에 쫓겨 꼭 한두 점을 보고 나온다면 봐야 할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를 그린 화가다. 메디치 가문에 의해 발탁된 그는 다른 세 명의 화가와 함께 미켈란젤로를 따라 시스티나 성당에 파견돼 ‘천지창조’ 아래에 ‘유혹받는 그리스도’ ‘이집트인을 죽이는 모세’ 등을 남기기도 했다.

‘비너스의 탄생’은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결혼선물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그 남근을 키프로스 근해에 던지자 그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이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했다는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옷을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다.

비너스는 완벽한 10등신 몸매로, 모델은 당시 최고의 미인으로 ‘피렌체의 연인’이라고 불리던 시모네타라고 전해진다. 보티첼리는 이에 앞서 그린 ‘프리마베라’에서도 그녀를 미의 여신 비너스의 모델로 썼다. 보티첼리는 말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성당과 수도원에 기부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로마·피렌체=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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