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상 19:1~8>
□ 우울증(depression)
많은 사람들이 자기 연민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연민과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울증이란 무엇입니까? 우울증이란 감정적인 침체(depression)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침체 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기 연민과 우울증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구상에는 3억 5천만 명의 우울증 환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10명 가운데 1명이, 여자는 5명 가운데 1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학문명은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자기 연민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더욱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사람에게도 우울증이 있다
자기 연민과 우울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세대와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자기 연민과 우울증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드에게도 있고 예수를 잘 믿는 분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우울증을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감기와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우울한 증상이 있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하나님 보시기에 純全하고 正直하고 하나님을 敬畏한 사람입니다. 그런 욥도 하루 하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고 자신의 몸은 병들었을 때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출생을 한탄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또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기 지겹다며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말을 할 정도로 우울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한 때 우울한 증상을 가셨던 사람 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엘리야가 로뎀나무 그늘에 앉아 하나님 앞에 자신의 비참함을 호소하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차라리 내 생명을 거두어 다라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선지자를 대표하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이름대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었던 사람입니다. 바로 얼마전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 850명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죽게 한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3년 반 동안 비가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할 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이 사람이 브엘세바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이 모습을 보면 지금 엘리야는 자기 연민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이습니다.
그러면 왜 엘리야는 지금 왜 자기 연민과 우울증에 빠져있을까요? 복수심에 가득찬 이세벨이 자기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위협하였기 때문입니다(2절). 천하를 호령하던 하나님이 사람이 복수심에 가득찬 이세벨이라는 한 여인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으로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어지고 만 것입니다.
□ 정죄하지 말라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로뎀나누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5절).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구나? 그렇게 무릎으로 승부하던 사람이 추라하게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구하다니... 주님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있는 엘리야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인생의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두려워 떨며 "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나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연민과 우울증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며 죽지 못해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분들을 보시면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아니 당신의 믿음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며 속으로 판단하며 정죄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이런 분들을 정죄하지 마십싱오. 쉽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엘리야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숫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시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울증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비수를 꽂는 것과 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죄하지 마시고 주님의 심정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졌듯이 당신이 바로 천사가 되어 그를 어루만져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떡과 물을 공급하여 줌으로 필요를 채워주고 힘을 얻게 하였듯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힘을 얻도록 도와주십시오. 함께 운동도 해주고 함께 쇼핑도 해주고 할 수 만 있으면 그들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 어떻게 영적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가?
첫째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형편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형편을 바라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3절a)" 엘리야가 도망을 친 이유는 자기의 생명을 우해서입니다. 그러면 언제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습니까? "그가 이 형편을 바라보고"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고서입니다. 엘리야가 자기의 형편을 보고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을 쳤다는 것은 그가 영적침체에 빠져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우울증과 영적침체를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문제가 생기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곧 우울증이 된다는 것입다. 왜 사람들이 영적침체에 빠집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형편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침체에 빠지면 조급해집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마음이 급해집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후 영적침체에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고 난 이후 하나님의 칭찬가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심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데 칭찬과 보상은 커녕 아합 왕의 부인인 이세벨이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듭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영적침체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아무리 충성과 봉사를 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였다할지라도 내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눈을 열어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두터운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시며 나를 어루만져 주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엘리야는 바알의 숭배자들과의 영적 전쟁에서는 승리하셨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무너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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