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 6:11>
□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聯合하여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입니다(3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우리의 옛사람도 예수님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실 때 우리도 그와 연합되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예수와 함께 산 사람이다' 이것 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正體性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나는 決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과 연합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 입니다. 이것이 바로 福音의 核心입니다.
□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6절b).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4절).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부모님이 내게 주신 생명이 아닌 또 하나의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 생명입니다. 이 새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생명은 바로 사망의 權勢를 이기시고 復活하신 주님의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이 새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은 죄와는 무관한 생명이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새로운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이제 부모가 물려준 옛 사람의 생명이 아닌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삶이란?
그러면 새 생명 가운데 사는 삶은 무엇입니까?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삶은
첫째로, 사망이 다시 나를 主張하지 못하도록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9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主張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9절)" 여기 "다시"라는 말을 보면 그 전에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던 때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까지 아니 우리 안에 부활의 새 생명이 오기 전까지는 사망이 우리를 支配하였습니다. 사망의 權勢가 우리를 지배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支佛하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하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에 사망의 권세는 죄를 근거로 우리를 그동안 지배하고 다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되어 함께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사망이 우리를 다시 주장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 사는 자는 다시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육체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삶이 소극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와 意義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을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b)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는 말은 지금 죽음에 매임을 당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우리 안에 죽음을 정복한 부활의 새 생명이 와 있기에 부활의 생명을 가지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죽음을 향하여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바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며 사는 삶이며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입니다. 다윗은 사망의 陰沈한 골짜기를 거닐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누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그러면 누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하나된 자, 연합된 자들입니다. 아무리 부활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하는 자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5절).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마리아를 통하여 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였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不久하고 그들은 고기를 잡으러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자신이 연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고 예수님이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5절). 그런데 이 연합을 누가 이루십니까?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내가 주님과 함께 연합되어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언제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까? 오순절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다음 부터였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므로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하여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나된 자, 연합된 자만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나는 살아 있는 자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11절).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말은 그렇게 간주하고 그렇게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오륜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침체 이렇게 극복하라<2010.2.28/제21권 9호> (0) | 2010.09.12 |
---|---|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2010.4.11/제21권 15호> (0) | 2010.09.12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2010.08.22/제22권 34호> (0) | 2010.09.12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2010.8.15/제22권 33호> (0) | 2010.09.12 |
나의 기쁨을 充滿하게 하라 (2010.8.8) (0) | 2010.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