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謙遜한 마음으로 各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3.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充滿하게 하라.
□ 겸손한 마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虛榮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절)"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은 교만해도 누구나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驕慢한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모든 죄가 바로 교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罪惡의 어머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교만의 뿌리가 깊히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쳐서 복종 시키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교만해 지고 싶어서 교만해지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다 겸손한 자를 좋아하고 또 겸손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겸손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사람들은 겸손을 중요한 德目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시대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덕목은 겸손이 아니라 勇氣와 自負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용기와 자부심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고 勸勉합니다.
□ 겸손이란?
첫째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절b)"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卑下시키고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겸손은 결코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겸손은 자신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이기에 自存感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스왈 센더스가 "내 자신에게 動機를 附與할 수 있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도 동기를 부여 할 수 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를 說得한 자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고 眞正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 자신에 대하여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다른 사람들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 보다 많이 배웠고 많은 것을 가졌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을지라도 상대방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적인 존재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로, 다툼과 허영을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3절b)" 하나됨을 위하여서는 다툼과 허영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다툼이란 이기적인 慾望을 말하고, 허영이란 '알맹이 없는 榮光'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虛榮은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內紛과 葛藤의 원인을 다툼과 허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툼과 허영을 말하면서 "아무 일에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선한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교회 안에 分裂과 분쟁이 떠나지 않습니까?
왜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세우신 교회가 하나되지 못합니까? 다툼과 허영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툼과 허영은 교만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할 때 경쟁심과 명예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利己的인 욕망과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다툼과 허영을 버리는 것입니다. 겸손은 이렇게 다툼과 허영을 버리는 것입니다.
□ 서로를 돌아보라
우리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기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각각 자기가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4절)"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를 主로 告白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의 몸에 접붙힌 바 된 肢體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공동체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홀로 신앙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홀로의 신앙이 아니라 서로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서 깊이 묵상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世俗에 물들지 않고 孤高하게 사는 것을 敬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淨潔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患難 중에 돌보는 것입니다(약1:27).
우리가 이렇게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看過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각각 자기의 일을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4절a)" 각각 자기 일을 돌본다는 것은 먼저 나의 필요를 채우고 다음에 다른 사람을 돌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일을 돌보는 것은 자기가 맡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남을 돌보되 먼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남을 돌보아야 합니다.
□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런데 사실 내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도 버거운데 또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바쁜지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기쁨을 충만케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에게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쁨은 그들이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서로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쁨은 그들의 하나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울만의 기쁨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에게도 최고의 기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됨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음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기쁨입니다. 각각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최고 행복은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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